변사가 읊는 무성영화처럼, 명창이 부르는 판소리처럼!
불이 꺼지고, 영화는 광고 하나 없이 바로 펼쳐집니다. 속표지도 없이 면지부터 본문이 이어진다는 뜻이지요. 그만큼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기대하게 하는 구성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징검다리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면지를 넘겨보니, 변사가 내뱉는 첫소리처럼 긴장감이 감도는 목소리가 흐릅니다.
다리 위에 기다란 다리.
말 그대로 몸통은 없이 다리 위에 기다란 다리만 보이는 그림이 나타납니다. 참 깔끔하고 별 것 없는 그림인데도,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도는 건 왜일까요? 이 다리의 주인은 바로 왜가리입니다. 이 왜가리도 뭔가 낌새를 챘습니다. 몇 장면을 넘겨봅니다.
목을 쭈욱 빼는 왜가리 한 마리.
징검다리를 두드리는 단단한 부리.
변사의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소리꾼의 장단이 침을 꼴깍 삼키게 합니다. 변사는 말을 혀에서 혀로 굴리며 자유롭게 가지고 놉니다. ‘기다란 다리, 왜가리 한 마리, 단단한 부리’ 같은 말들이 가락이 되어 춤을 춥니다. 이쯤 되면 변사의 말장난은 예술이 되고 노래가 됩니다. 여러분이 변사와 명창이 되려면 글을 꼭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판소리처럼 흉내 내어 보세요.
그러나 저러나, 왜가리는 무슨 낌새를 챘기에 단단한 부리로 징검다리를 두드렸을까요? 바로 징검다리인 줄만 알았던 돌덩이 하나가 거북이었기 때문이지요. 거북은 왜 징검다리가 되어 몸을 숨겼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고민할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다음 장면과 마주합니다.
햇볕 좋은 어느 날 한때, 싸움일까 잔치일까?
거북과 왜가리가 오묘하게 눈을 마주치는 사이, 한쪽 끝에서 오리 한 마리가 꽥꽥거리며 징검다리를 건너옵니다. 그와 비슷한 때, 또 다른 쪽에서는 돼지 한 마리가 꿀꿀거리며 징검다리를 건너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둘은 한가운데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엎친 데 덮쳤네요. 오리 뒤에 오리, 돼지 뒤에 돼지 여러 마리가 꽥꽥 꿀꿀 건너옵니다. 그 사이 왜가리는 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