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어떻게 영혼을 기억으로 대체했는가?
‘현대 사상의 거인’ 이언 해킹, 다중인격으로 기억의 과학들을 추적하다
‘현대 사상의 거인’ 이언 해킹의 역작
작년 5월 캐나다 철학자 이언 해킹(Ian Hacking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뉴욕타임스》는 “과학철학과 확률, 수학 분야에서 학계의 판도를 바꾼 기여를 하였으며, 인간과학 분야에서도 널리 알려진 통찰을 제공한 현대 사상의 거인”이라고 평했다. 해킹은 물리학과 수학에서부터 역사학과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어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여 ‘1인 학제간 학부’ ‘진정한 다리 건설자’라고 불렸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실재론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해킹은 1990년대부터 미셸 푸코의 영향 아래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간과학으로 초점을 옮겨,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그것이 출현한 역사적 맥락을 캐는 고고학적 작업에 착수했다. 인간과학은 발전과정에서 사람들의 범주를 만들어내고, 이후 사람들은 그 범주에 속한다고 스스로를 정의하게 되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분류가 분류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 영향이 다시 분류를 변화시키는 현상을 ‘고리 효과(looping effect’라고 명명했다.
1995년에 발표한 이 책 《영혼 다시 쓰기》는 이러한 고리 효과에 의한 ‘인간 만들기(making up people’의 연속선상에서, 19세기 말 등장한 새로운 ‘기억의 과학들’이 영혼을 기억으로 대체해간 과정을 다중인격이라는 특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다중인격은 실재하는가?
다중인격은 정신의학에서 가장 논란이 심한 진단명이다.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다른 인격이 존재하고, TV 채널이 바뀌듯이 각 인격이 그 사람을 특정 시간 동안 교차하며 지배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성격, 직업, 나이, 심지어 언어, 인종, 성별까지 다른 인격들이 한 사람 안에 평균 16개씩이나 존재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19세기 말 처음 진단된 이후 1960년대까지 많아야 역사상 100명이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