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 05
1장 프롤로그: 왜 국가정체성 문제인가? ― 13
2장 광해군 대 말엽 외교 노선 양상과 정사 논쟁, 1618~1622 ― 29
후금과의 국서 교환 문제 ― 32
요동 난민과 징병 칙서 ― 42
존호 문제 ― 55
정사 논쟁의 의미 ― 59
3장 정묘호란의 동인과 목적, 1623~1627 ― 63
정변 후 조선과 후금의 관계 ―68
맹약의 내용으로 본 침공 목적 ―73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조선 정책 ― 82
침공의 의미 ― 90
4장 척화론의 양상과 명분, 1627~1642 ― 93
정묘호란과 척화의 이유 ― 96
병자호란과 척화의 논리 ― 102
존주의 모습들 ― 114
척화론의 의미 ― 119
5장 전쟁 원인의 기억 바꾸기, 1637~1653 ― 131
국서의 교체와 ‘이상한’ 축약 ― 135
침공 이유의 변개 ― 138
병란의 귀책사유 변경 ― 147
기록 조작의 의미 ― 156
6장 북벌론의 실상과 기억 바꾸기, 1649~1690 ― 161
효종 대 북벌 논의의 실상 ―164
나선정벌 조선군 사령관의 심정 ― 170
북벌의 성공 사례 만들기 ― 181
기억 조작의 의미 ― 185
7장 에필로그: 조선의 국가정체성과 ‘아버지의 그림자’ ― 191
척화론: 조선은 왜 질 줄 알면서도 전쟁을 불사했을까? ― 195
자구책: 역사 기억의 조작과 ‘조선중화’라는 자기 의식화 ―203
현재성: 조선과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문제 ―224
주 ― 228
참고문헌 ― 250
찾아보기 ― 255
병자호란, 언제까지 한국사의 비극으로만 둘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병자호란에 대한 이해는 매우 평면적이다. 큰 틀에서 보면 16세기 말에 대규모 국제전인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명이 구축해놓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균열이 발생했고, 그 틈에서 만주가 성장하면서 패권이 교체되었다. 병자호란은 만주의 후금/청이 중원의 명과 전면전에 나서기 전에 후방의 위협을 제거한 부수적 사건으로서, 이상의 전제 안에서 조선의 상황과 입장을 분석하는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그 결과 한국사 관점에서 이 전쟁은 ‘광해군의 중립 외교가 실패하고 결국 오랑캐의 침략을 받게 된 사건’으로, 무엇보다 임금이 성 밖으로 끌려나와 땅에 아홉 번 머리를 찧으며 적에게 무릎 꿇은 ‘삼전도의 굴욕’은 1910년 ‘경술국치’에 버금가는 한국사 최악의 순간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학계에서는 당대의 국제 질서 변동이라는 외부 요인에 주목하여 조선과 청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19년 출간된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구범진, 까치은 침공의 당사자인 홍타이지(청 태종를 주인공으로 삼아 청의 의도와 전황을 정밀하게 재현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계승범의 새 책 『아버지의 그림자』 또한 전쟁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홍타이지’를 지목한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의 앞과 뒤를 더욱 넓고 치밀하게 연결한다. 그는 광해군 재위 후반부에 조정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국왕과 신료 사이의 이념 논쟁에서 시작하여 주화론과 척화론이 어떻게 격돌했는지를 밝히고, 병자호란 시기에 청 태종과 인조가 주고받은 국서를 놓고 일어난 기록 변조 사건과 숙종 시기에 임금과 사대부가 함께 벌인 기억 조작 사건을 순서대로 추적한다. 이를 통해 임금보다 더 중요하고 오랑캐보다 더 두려웠던, 그래서 조선의 종묘사직을 무겁게 짓눌렀던 바로 ‘그것’의 실체를 역사의 전면에 꺼내놓는다.
효치국가의 최종 모델, 군부·신자 관계
먼저 계승범은 광해군 재위 후반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