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
왜 가족의 양보와 희생은 아직도 당연할까?
정성껏 요리해서 식탁을 차렸는데, 나는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다른 가족이 먹고 싶은 걸 다 고른 후에 남은 것만 먹어야 하는 상황. 그것도 매주 일요일 반복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과연 참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단 한 번이라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다시 상상해 볼까요? ‘나’를 ‘엄마’로 바꿔서요. 엄마는 정성껏 요리해서 식탁을 차리고, 가족들은 엄마가 식탁에 앉기도 전에 먼저 먹기 바쁘고 엄마는 남은 걸 먹는 거죠. 매주 일요일 변함없이요. 어떤가요? 놀랍게도 조금 전보다 화가 덜 나지 않나요? 누군가는 이건 상상이 아닌 우리 집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할머니, 나의 엄마 또는 엄마인 내 이야기라고 말이에요. 엄마와 여성은 특별히 식탁 주변에서 오랫동안 양보와 희생의 대명사였으니까요. 그런데 스페인에서도 다르지 않나 봅니다. 《엄마의 날개》는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자매가 쓰고 그려 낸 엄마의 이야기거든요.
엄마의 역할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들
식탁에서 사라진 엄마의 존재
《엄마의 날개》에 등장하는 엄마는 가족에게 양보하는 것이 일상이 된 것처럼 보여요. 이 집 가족은 닭 요리를 좋아하나 봐요. 엄마는 일요일마다 닭 한 마리를 오븐에 구워 식탁을 차리고 아빠와 두 아이는 매번 자신들이 좋아하는 부위를 집어 들고 허겁지겁 먹기에 바빠요. 엄마에게 어떤 부위를 먹고 싶은지 묻지도 않고, 심지어 엄마가 식탁에 앉기를 기다리지도 않아요. 맛있는 요리를 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누구에게도 기대할 수 없지요. 그야말로 엄마는 있어도 없는 사람,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죠.
그렇게 늘 엄마는 정성껏 요리하고서도 가족들이 늘 남기는 닭 날개를 먹어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등이 간질간질하다 싶더니 날개가 돋기 시작해요. 엄마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솜털이 날개가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