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어멍을 끌고 가요?
우리 아방은 잘못한 게 없다고요!”
작은놈은 바람 부는 언덕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연을 날리고, 앞마당에서 누렁이와 뛰놀며 눈사람을 만듭니다. 산중턱의 말 농장으로 일하러 간 아빠를 기다리면서요.
그런데 올 겨울엔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육지에서 왔다는 토벌대 아저씨들은 마을 사람들을 총으로 위협하고, 함부로 잡아가고,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합니다. 매일같이 온 마을에 고함과 비명이 휘몰아쳐요.
작은놈의 엄마도 잡혀갑니다. 아빠가 산에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요.
작은놈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왜 싸우는지도, 해방 후 나라가 남한과 북한 두 쪽으로 갈라져야 하는 이유도요.
하지만 산사람 가족으로 낙인 찍힌 이상, 살아남으려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놈은 안경삼촌을 따라 산속 굴에 몸을 숨겨요. 허리조차 곧게 펼 수 없는, 랜턴 빛조차 희미한 굴속에는 엊그제까지 농사 지으며 가축을 키우고 물고기를 잡던 이웃마을 삼촌들도 와 있습니다. 10여 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석상처럼 하루하루 표정을 잃어가요.
푸른 평화의 땅 제주에 닥친 비극
제주 4,3은 6,25 전쟁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 가장 가슴 아픈 현대사 중 하나입니다.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민 열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 가족, 이웃의 죽음에도 사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족을 대신 처형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었습니다. 토벌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살아남은 유족들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목숨을 잃거나 끝없는 감시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제주도에는 죄 없는 사람이 희생되고, 살아남은 유족들이 고통당하는 제2, 제3의 다랑쉬굴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수백, 수천 개의 마을 중에 제주 4,3 희생자가 없는 곳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제주도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