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함께 지켜 온 마리와 언니 브로니아의 약속
1903년, 마리 퀴리가 남편 피에르 퀴리와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여성이 노벨상을 수상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867년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의 언니 브로니아도 마찬가지였지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둘은 꿈을 이루기 위해 힘을 합쳐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공부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먼저 프랑스로 떠난 브로니아는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두고 고민에 빠진 동생 마리에게 함께 꿈을 이루기로 한 약속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마리가 대학 졸업 후 연구실에서 고군분투할 때 함께할 동반자 피에르 퀴리를 소개해 준 사람 역시 언니 브로니아였지요. 남편 피에르 퀴리를 이른 나이에 떠나 보낸 마리를 위로하고, 소르본 대학교에서 피에르가 맡던 수업을 마리가 이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 또한 브로니아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의사가 된 브로니아는 세계 대전 당시 마리가 발명한 엑스레이 장치를 이용해 폴란드에서 수많은 군인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동생 마리가 폴란드에 세운 두 번째 연구소를 맡아 운영하며 의료계에서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갔습니다.
꿈을 향해 나아간 브로니아는 동생 마리에게 가장 적절한 도움을 주는 최고의 조력자였습니다. 평생 동안 이어진 두 사람의 각별한 자매애 덕분에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대단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용기 있는 움직임
여성이 마음껏 공부하고 꿈을 펼치기 어려웠던 시대에 마리와 브로니아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힘든 순간에 부딪힐 때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마리와 브로니아 자매는 늘 서로의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과학자가 되어 방사능 연구에 평생을 바친 마리 퀴리 덕분에 오늘날 원자력 발전부터 암 치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