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후기의 만화경, 식자
식자(識字란 무엇인가? 《공부하는 인간: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에서 다루는 식자들은 특정한 유형의 교양을 소유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지닌 교양은 어떤 형태인지, 그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위상을 누렸는지 소상히 다루었다.
식자는 지식을 기반으로 특정 업무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읽고 쓰는 능력뿐 아니라 책을 활용해 지식을 보존하거나 연구한다.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사회적 위치를 갖고, 경제 활동을 이어간다. 이런 면에서 《공부하는 인간》에서의 식자는 ‘지식인’과는 범주가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르 고프의 ‘지식인’이 어쨌거나 학교의 인간, 가르치고 배우는 인간이라면, 베르제의 ‘식자’는 학교 바깥에서 배움을 활용하는 이들, 배움을 밑천 삼아 교회나 국가나 도시에서 한자리를 얻어냈던 이들, 심지어는 풍월 수준의 학식으로 생계를 꾸린 초급학교 교사, 하급 관리, 공증인이나 외과술사 등 ‘매개적 지식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들 없이 지식이 전파될 수 없고, 유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책의 부제에서도 드러나지만, 중세 말인 14~15세기는 종교·사회·정치적 측면에서 식자층이 중요하고 유효한 행위자가 될 만큼 그 인원수와 사회적 무게가 확보됐다. ‘근대국가’는 식자들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 이처럼 식자들은 ‘암흑시대’라 여겨진 중세의 풍경을 만화경처럼 다채롭고 다양하게 비추고 있다.
근대의 토대, 공부하는 인간
“배움은 단지 알기 위함이 아니라 내보이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중세 말 식자에게 요구된 지식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더불어 이들이 어떤 유형의 학교에서 어떤 책을 이용하여 교육을 받고, 사회적 규정에 핵심이 되는 앎에 숙달했는지도 알아볼 것이다.
중세 지식 문화에서 핵심이자 권위였던 라틴어에서 편리하고 이해하기 쉬운 당시 현지어의 부흥, 학문으로서 인정받게 된 의학, 법률가의 사회적·정치적 성공 등 중세 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