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사회 모순을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한 장르이고, 모순은 약자의 삶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처지의 누가 고발할 때 설득력이 높을까? 누구의 목소리로 말할 때 문제가 절실해 보일까?
고전소설은 그 약자를 대개 여성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신분제의 최약체인 천민에 속하는 기생의 딸 춘향이 “충효 열녀에도 위아래가 있소?”라며 변학도의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운영이 ‘궁녀’인 이유다.
자유를 꿈꾸는 운영과 김 진사의 금지된 사랑
그 비극에 기꺼이 함께하는 궁녀들이 일으킨 균열
조선 시대 궁녀는 하층 계급이자 여성이라는 점에서 신분과 성별의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운영과 아홉 궁녀는 안평대군의 수성궁에서 당대 지배층 남성이 누리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 “손님들이 지은 시는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주를 기른다. 소옥, 부용, 비경, 비취, 옥녀, 금련, 은섬, 자란, 보련, 운영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 또한 이들이 저마다 고유한 캐릭터임을 암시한다. 나들이 갈 장소를 정하는 일을 두고 팽팽하게 토론하는 과정은 궁녀들의 깊은 학식과 정확한 판단력을 보여 준다. 그들이 궁녀의 비인간적인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을 지지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고기가 언덕처럼 쌓여 있고 술이 강처럼 흐르지만 담장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곳. 누구나 시를 논하고 문장을 갈고닦을 수 있지만 결국 여성은 명성을 얻을 수 없는 곳. 이 모순을 알아차리고 궁의 규율 대신 운영의 곁에 서는 궁녀들에게서 수성궁의 균열은 시작된다. 두 연인이 만날 수 있게 돕고, 안평대군이 의심을 누그러뜨리도록 운영을 감싸 주는 것이다.
온전히 여성의 눈으로 그려 낸 세계
고전소설 속 여성은 주로 남성 주인공의 눈에 비친 세상의 일부였다. 다정한 연인이나 현명한 아내와 같이 남성의 욕망에 응답하는 존재에 가까웠다. 방에 불쑥 침입한 남성의 고백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