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인간을 매혹해 온 것들, 실크로드로 통하다
1부 ‘실크로드’라 불리기 전, 이미 실크로드는 존재했다
실크로드 가는 길
실크로드의 어원
비단, 로마를 휘감다
만리장성이 실크로드를 뚫다?
2부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
교통수단
교역품과 문물
교역의 주역, 소그드인
실크로드가 사라지다
3부 사라진 실크로드의 대탐험 열풍
유물 발굴 대경쟁
-스웨덴 지리학자, 스벤 헤딘
-영국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
-프랑스 고고학자, 폴 펠리오
-독일 동양학자, 알베르트 폰 르코크
-미국 동양학자, 랭던 워너
반달리즘
21세기, 다시 열리는 실크로드?
참고 문헌
인류를 위한, 인류에 의한 모든 것이 통하다
로마에서 비단은 소위 명품과도 같았다. 이런 부드러운 감촉과 화려한 색을 본 적 없었던 로마인들은 중국의 비단에 열광했다. 비단 수입에 들이는 돈이 너무 많아 급기야는 비단옷 착용을 금지시킬 정도였는데, 이처럼 로마인들이 비단에 매료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실크로드 ’ 때문이다. 우리말로 ‘비단길’일 만큼, 이 길을 통해 교역한 상품이 주로 비단이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비단뿐 아니라 식재료, 도자기, 동식물 등 다양한 물자가 오고 갔을 뿐 아니라,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 심지어는 병균까지 이 실크로드를 통해 퍼져 나갔다. 즉, 인류의 지평을 넓히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왜 하필 그곳에 길이 생겼을까?
길은 다양한 필요와 목적을 위해 만든다. 실크로드 역시 교역이라는 목적을 위해 형성됐다. 하지만 원래 목적은 교역이 아니었다는 사실.
한나라의 황제 무제는 중국을 위협했던 유목민 흉노족을 제압하기 위해 사신 장건을 서역(중국의 서쪽, 대월지국으로 파견을 보냈다. 그들과 동맹을 맺고자 한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서역에 대한 장건의 기록은 그들과의 교역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고, 장건이 오갔던 그 길은 중국과 로마를 이어 주는 길로 재탄생했다. 실크로드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크로드’ 하면 사막 위에서 낙타를 타고 가는 상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처럼, 실크로드는 삭막한 사막과 황량한 초원, 산맥을 넘나들어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상인들의 역할이 있었다. 특히 소그드인들은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실크로드를 종횡무진하며 교역에 적극 나섰으며, 그 흔적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약탈일까? 발굴일까?
실크로드 유물 대탐험 열풍
실크로드가 사라졌다. 사막을 옮겨 놓을 정도로 거대한 모래폭풍이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