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1장 17세기 광산김씨 예안파의 종가 건축물 활용
1 머리말
2 예안 지역 광산김씨 세거지의 입지와 특성
3 16세기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서 경영한 건축물
4 17세기 집성촌 형성에 따른 종가 건축물 활용
5 맺음말
2장 17세기 초 예안 사족 김광계의 접빈객과 일상정치
1 머리말
2 사족의 네트워크와 일상정치
3 ‘토주土主’에 대한 접빈객
4 향중 및 문중 모임의 주인공
5 ‘접빈객’의 후유증과 양생훈
6 맺음말
3장 『매원일기』를 통해 본 예안 사족 김광계의 관계망
1 머리말
2 관계망의 승계와 새로운 관계망의 형성
3 정구 문하의 출입과 관계망의 확장
4 ‘장현광 계’와의 교유와 위상 강화
5 맺음말
4장 광산김씨 예안파의 병자호란 대응 양상
1 머리말
2 정묘호란
3 병자호란
4 맺음말
5장 조선중기 광산김씨 예안파의 일상생활
1 머리말
2 속례와 정례의 이행과 병행 양상
3 외내 마을의 공동체 생활과 동약 재건
4 술수의 활용과 일상적 풍속: 점복, 택일, 사주, 풍수
5 스승을 만나는 꿈, 학문하는 처사의 내면적 무의식
6 맺음말
6장 매원 김광계의 학문과 사회 활동
1 머리말
2 김광계의 학문
3 김광계의 사회 활동
4 맺음말
조선의 유교적 전환의 실상을 읽는다
유교 도덕과 양반의 나라, 조선의 속살을 읽는다. 한 선비의 미시사와 일상사로 읽는 조선의 ‘유교적 전환’의 실상
역사는 인간이 지나온 삶의 자취의 기록이다. 그것은 통상 정치사, 경제사, 제도사, 사회사 등의 범주로 기록되지만 그것만으로는 과거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실상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최근 조선시대 연구에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관찬사서에서 일기나 고문서 등의 자료로 연구의 관심을 확대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은 의례, 건축, 전쟁, 의학, 사상, 향촌 사회 등에 관심을 가진 6명의 연구자가 1년 동안 <매원일기>와 함께 보낸 결과물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개인의 수양부터 중앙 정치까지 모든 것을 전일적으로 지배한 사회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선비로 통칭되는 ‘양반’이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하고 이끈 사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추상적 이념형과 달리 조선의 ‘유교적 전환’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우리가 기존에 알던 그와 같은 이념형과는 다른 조선의 얼굴을 새롭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서 17세기는 다른 시기와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조선전기나 후기에는 중앙집권화된 질서가 강조되면서 국가 주도의 흐름이 강했던 반면 17세기가 포함된 조선중기에는 ‘사족 지배 체제’가 논의될 만큼 군현제에 입각한 공적 지배에 더해 지방의 향촌 내부의 운영 원리가 두드러졌던 시기이다. 재지 사족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공적 지배를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행정 지배가 충분히 미치지 못한 향촌 사회 내부의 여러 문제를 조정, 협의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향촌 사회에서 주도적 존재로 기능했다.
17세기의 이러한 상황을 전제할 때 사족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때로 주목되는 시기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선조 후반, 광해군, 인조 때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서야 비로소 사족들은 조선시대에서 통시대적으로 존재하는 세력이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서의 자기 역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