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바르게 깨달아야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1부 교인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
1 예수님을 의심한 세례 요한은 제정신이었을까?
세례 요한의 영적 감각을 잃은 그리스도인들
2 탕자의 비유에서 얻는 교훈, “주님께 돌아오면 다 된다?”
탕자의 비유에서 무서운 ‘신성모독 죄’를 읽는다
3 예수님을 깨워도 여전히 나는 문제투성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아직도 내 삶에서 대립한다
4 낙타와 바늘귀 비유는 왜 부자만 공격할까?
부자와 가난한 자, 우리 모두에게 주는 교훈
5 실로암에서 우리는 성경을 못 보는 맹인이 된다
신앙인들이여, 정말 행복한 삶이 보이는가?
6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린 양이 이리를 이길 수 있다고?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7 우리 마음에서 부활하지 못하는 부활 신앙
부활 신앙은 단지 죽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2부 교회를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
8 부자 청년은 단지 재물이 아까웠을까?
부자 청년의 삶에서 읽어야 할 한국교회의 율법주의
9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엉뚱한 기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목회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10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는 왜 시한부 종말론만 볼까?
“회개 안 하면 죽는다!”가 한국교회를 망친다
11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만 하는 사람들에게
성전에서 휘두르신 채찍의 끝은 누구를 향해 있는가?
12 왜 교회는 예수님의 세족식을 왜곡했을까?
세족식은 사랑과 섬김의 본이 결코 아니다
13 베데스다 못에 비친 한국교회의 자화상
무한 경쟁 구도가 상처 입은 교인을 치유하지 못한다
14 ‘메시아 비밀’은 지금도 여전히 비밀
여전히 힘의 논리를 갖고 있는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바르게 깨달아야 제대로 산다!
지금 우리에겐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열심히’ 사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야 제대로 산다.
신앙은 믿음의 대상이 하나 더 느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부모를 믿고, 친구를 믿고, 가지고 있는 돈의 힘과 권력을 믿는 것처럼, 여러 가지 믿음의 대상에 또 하나 ‘하나님’을 끼워 넣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란 삶의 기준과 가치관이 ‘하나님’ 한 분으로 송두리째 바뀌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기준 사이에서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며, 결국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축복, 성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빌고, 매달리고, 협박(?까지 하는 매우 기형적인 삶으로 치닫게 된다.
우리의 신앙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맘모니즘과 바알 신앙을 들춰내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라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오는 결과라고 이야기 한다. 주님이 가라고 하신 좁은 길과, 지라고 하신 십자가를 잘못 이해한 데서 생기는 엉뚱한 결과인 것이다. 사실, 이 모습은 현대의 많은 신앙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우리의 신앙 안에 깊이 박혀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맘모니즘과 바알 신앙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이러한 모습은 교회와 교인의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온다고 설파한다. 바르게 믿고 깨달아야 제대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말씀의 올바른 해석에서부터 시작된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되어 가는 이 시점에 와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루터의 개혁은 성경의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