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서론
Ⅰ. 16세기 초, 『경민편』의 간행과 감사의 계몽정치
1. 김정국의 『경민편』 간행과 정치 환경
2. 『경민편』의 초기 모습:‘상허본(常虛本’을 통한 검토
3. 『경민편』 초기 간본의 구성과 범죄의 현실
4. 『경민편』의 이념과 정치적 성격:계몽의 정치와 감사(監司의 선화(宣化 책무
Ⅱ. 당쟁기 『경민편』의 분화:허엽의 중간본과 이후원의 개간본
1. 『경민편』의 진화와 변모:허엽의 『경민편』 중간(重刊과 ‘위민시은론(爲民施恩論’
2. 『경민편』의 전국화:17세기 중반 중앙정부의 『경민편』 간행과 배포
Ⅲ. 18세기, 체제 위기의 봉합과 『경민편』
1. ‘무신변란’과 증보본 『경민편』의 출현
2. 증보 『경민편』의 개성:이후원 간본의 계승과 지역성 첨보
3. 18~19세기 『경민편』의 활용과 ‘문자의 가르침[文字之敎]’
결론
부록
참고문헌
『경민편』은 내용과 구성에서 크게 보아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범죄의 위계를 재구성하여 가족과 혈연에 대한 범죄를 중요하게 부각했다. 김정국은 범죄를 배치하며 부모를 비롯한 가족·친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살인·강도와 같은 강력 범죄를 그 다음에 위치시켰다. 범죄를 두루 포괄하되, 가족과 혈족·가문을 중시하는 의도된 구성이었다. 여기에는 종법(宗法의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사회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려던 이 시기 사족(士族의 사회적 이해가 강렬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요소는 권력 운영 방식이었다. 범죄자가 나오기 전에 지방민에게 범죄가 갖는 문제를 교육과 계몽으로 미리 알게 해야 한다는 『경민편』의 방식은 교화의 영역, 교화의 역할을 전면적으로 확대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15세기의 권력이 교화를 내세우면서도 그 주된 내용은 충성·효도·절개 등 삼강의 규범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는 범죄를 막고자 할 때 형벌책이 큰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경민편』은 이에 반해 일상의 교육과 계몽의 영역을 주요 범죄로 이동하여 확장했다. 형벌의 대상이 곧 교화의 대상이었다. 지방민들이 범죄를 저질러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범죄와 일탈에 대한 국가의 엄혹한 처벌 규정을 앎과 동시에 그러한 범죄에 빠져서는 안되는 이유를 미리 깨달아야 한다는 접근법을 취하였다. 교육과 계몽을 통해 지방민들이 범죄와 형벌의 실체를 이해하게 하여 그들의 범법을 막아내고 이로부터 국가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안정과 권력을 유지한다는 관념이 저술의 바탕에 가로 놓여 있었던 셈이다. 『경민편』 최고의 개성은 여기에 있었다.
조선 당쟁기 『경민편』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경민편』은 16세기 후반 경상감사이던 동인 허엽(許曄이 중간하고 17세기 중엽 완남부원군 서인 이후원(李厚源이 간행하여 전국에 보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시기 『경민편』의 간행 형태는 16세기 후반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