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유하는 철학
《철학의 위안》은 위안 문학이다. 로마 전통에서 위안 문학은 작가가 불행한 상황, 즉 추방당하거나 죽음을 앞둔 상황이나, 가족이 죽었을 때 쓰던 작품 형식이었다. 보에티우스 역시 억울하게 모함당하여 처형될 날을 기다리며 이 작품을 썼다.
존경받는 어른인 장인 쉼마쿠스와 정숙한 아내, 두 아들이 나란히 콘술(흔히 집정관이라고 하는의 자리에 오르는 유례없는 영예를 얻고, 왕 테오도리쿠스의 신임을 얻는 등 권력의 정점에까지 올랐던 보에티우스. 그러나 반역죄로 고소당한 알비누스가 판결도 나기 전에 처벌하려는 세력에 맞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알비누스를 변호한 탓에 오히려 반역에 관련된 증거를 은폐하고 사악한 마술에 홀려 있다며 고소를 당한다. 이에 정치적으로 불안하던 왕이 유죄 판결을 내려
보에티우스는 유배와 사형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당대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다가 재산을 몰수당하고 유배되어 사형될 날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보에티우스는 시의 무사 여신들과 더불어 한탄한다.
“한때 행복하고 파릇파릇했던 젊은 시절의 영광으로, 지금은 슬픈 늙은이의 운명이 위로받는다. 불행을 겪으며 노년이 생각지도 못하게 서둘러 찾아왔고, 슬픔도 자신의 나이를 내게 주었으니 때 이른 백발이 이마에서 흘러내리며 육신이 소진되어 피부가 주름져 떨리는구나. (… 어찌 그토록 자주 나를 두고 행복한 자라 하였는가, 친구들이여! 몰락한 자는 안전한 받침 위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이때 철학의 여신이 그를 찾아온다. 시의 무사 여신들을 매섭게 쫓아낸 철학의 여신은 말한다. “지금은 치유가 필요한 때이지 한탄할 때가 아니다.”
의인화된 철학과 보에티우스의 대화, 그리고 시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보에티우스가 자기 자신을 치유할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자신이 평생을 추구한 철학이다. 철학의 여신이 옷깃으로 눈물을 닦아 준 뒤 눈이 맑아져 그녀를 알아본 보에티우스는 철학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호소를 들은 철학은 “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