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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 강화도에서 보는 정묘호란·병자호란
저자 이경수
출판사 일조각
출판일 2022-01-30
정가 19,000원
ISBN 9788933707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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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빛나는 물길이 다다르는 곳
왜 강화도인가 / 여진에서 만주로 / 광해군 가고 인조 오고 / 갑곶나루

정묘호란
후금은 왜 조선을 침략했을까 / 고려에서 했던 것처럼 / 궁궐, 궁궐, 또 궁궐 / 형 죽이고 아우도 죽이니 /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더라면 / 아이고, 모문룡 / 오자마자 화친 카드 / 화친은 항복인가 / 정권 안보, 국가 안보 / 용골산성이 있었다 / 백성의 사늘한 눈빛 / 그래, 죄는 내게만 물어라 / 조약 맺은 장소는 연미정이 아니다 / 위로가 필요해 / 과거를 시행하다 / 유수부가 되다 / 강화·강도·심도 / 교동도를 주목하다 / 짚어 보아야 할 호패법 / 백성은 사족의 그림자라

병자호란
오군, 오군, 사아이거호 / 삼배구고두례 / 그동안 조선은 무얼 했나 / 무엇이 문제였을까 /
왜, 또? / 어찌 강화도가 떨어졌단 말인가 / 공유덕이? / 광성진이 아니었다 / ‘아빠 찬스’ / 검찰사, 그 모호한 직책 / 구원일·황선신·강흥업 / 삼충사적비 / 위대한 항명이 필요했다 / 불 속에 몸을 던져 / 송해수·정명수·김자점 / 청군의 만행 / 여자이기 때문에 / 충렬사 / 충렬사 사람들 / 나는 여기서 죽는다 / 죽지 못한 남자, 죽지 않은 여자 / 1636년, 남한산성 일기 / 1637년, 남한산성 일기

떠나간 이들과 이 땅에 남은 것
사대·명분·의리 / 성리학이 보는 세상 / 척화를 생각함 / 인조의 소원 / 그리워라, 내 고향 / 또 다른 맹약 / 황손무의 편지 / 실록과 역사


정묘호란·병자호란 전후 연표
도움받은 자료
잊을 수 없는 혹독한 두 번의 겨울

17세기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이 두 번의 호란을 겪었다. 호인(胡人, 즉 만주 사람이 일으킨 난리라고 해서 호란(胡亂이라고 한다. 이 전쟁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두 번 다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가 재위하던 때 일어났다. 두 번째, 이름만 달라졌을 뿐 같은 나라에서 쳐들어왔다. 세 번째, 눈이 펑펑 쏟아지는 추운 겨울에 일어났다.

제1대조인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두 번째 왕으로 즉위한 홍타이지는 조선을 자신의 아래로 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인조가 즉위하기 전인 광해군 때도 후금은 시시때때로 조선을 공격했으나 홍타이지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장자가 아닌 그가 모두를 제압할 황제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업적과 큰 힘이 필요했다. 주변 국가들의 인정을 받아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고, 가뭄 등으로 불안했던 경제와 민심을 다스리고자 했던 그에게 해결책은 전쟁이었다. 그러니 명 정벌에 앞서 명과 사대 관계에 있는 조선을 공격하는 건 당연했다.

1627년 1월, 후금이 쳐들어오자 인조는 그들을 피해 강화행궁으로 피신했다. 수도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택했던 도피 생활은 약 3개월 만에 끝나는데, 워낙 후금이 화친을 재촉하기도 했거니와 인조가 더 큰 피해를 원하지 않아서였다. 명을 받들었던 기존의 관계를 배신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에 자괴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인조는 고민 끝에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었다. 이대로 끝나겠거니 하고 안심한 것도 잠시, 9년 뒤 전쟁이 다시 일어났다.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었고 1636년 12월, 조선시대 강화 제일의 관문이었던 갑곶나루를 기어이 뚫고 짓쳐들어왔다. 앞으로 자신을 형이 아닌, 상전으로 받들어 모시라며 관계를 공고히 하고자 함이었다. 예상보다 더 빠르고 깊게 들어온 청군의 기습에 조선은 당황했고, 인조는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피했지만 길게 버틸 수 없었다. 그리고 47일 만에 청에 항복했다. 1637년, 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