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설에 대하여 7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
Ⅰ. 도덕 일반에 있어서 실천에 대한 이론의 관계에 관하여 13
교수 가르베 씨의 몇 가지 이의제기들에 대한 답변을 위하여
Ⅱ. 국가법에 있어서 실천에 대한 이론의 관계에 관하여 31
홉스에 반대하여
Ⅲ. 국제법에 있어서 실천에 대한 이론의 관계에 관하여 61 보편적, 인간사랑의, 즉 세계시민적 견지에서 고찰하여(모세스 멘델스존에 반대하여
마이너 판 편집자 미주 73
옮긴이 해제 83
옮긴이 후기 113
찾아보기 121
클라우스 엡슈타인(『독일에서의 보수주의의 근원들』, 1973에 따르면 레베르크와 프리드리히 겐츠는 “개혁보수주의자”로 명명된다. 그들은 당시의 정치적 현 상태에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프랑스 혁명에는 반대했었으며, 더욱이 그 둘은 칸트의 낙관주의가 하나의 오류라고 생각했었고, 그들의 관점에서 보아 이론은 결코 실천을 위해서 충분할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당시의 지식인 사회는 가장 현행적인 주제로서 1789년의 인권과 시민권 선언, 그리고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표어와 더불어 이론과 실천에 대한 논쟁을 가열시켰고, 칸트에게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그의 입장과 관련하여 해명하는 말을 기다렸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칸트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칸트의 지지자들조차도 칸트의 이론이 혁명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관련하여 상이한 방향으로 그들의 관점을 전개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1792년 7월 30일에 칸트는 <베를린 월보>의 편집자인 요한 에리히 비스터에게 베를린 검열관청의 인쇄허가가 거부되었던 한 종교철학적 작문(“인간에 대한 지배를 둘러싼 선한 원리와 악한 원리의 투쟁에 관하여”에 대한 대체물로서 “순전히 도덕철학적인” 한 논문을 예고하는데, 그 논문에서 그는 브레슬라우의 대중철학자 크리스티안 가르베가 직전에 출판한 한 저술에서 그의 도덕철학에 대해 행한 비판에 답변하고자 했다. 그 논문은 예고된 형태로는 결코 출간되지 않았다. 칸트는 그 논문을, 우리에겐 그 이유가 직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측컨대 레베르크가 제기한 비난 때문에, 국가법과 국제법의 주제들로 확장하여 그것을 1793년 9월 비스터가 담당하던 시기에 『속설에 대하여: 그것은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대해서는 쓸모없다는』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시켰다.
이 논문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에서 칸트는 도덕적 이론과 도덕적 실천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그는 그보다 더 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