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척박한 나라, 케냐에서 태어나다
2.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왕가리
3. 낯선 나라, 미국에 발을 딛다
4. 호프만 교수와 함께 연구하다
5. 나무 심기, 그린벨트 운동의 시작
6. 우후루 공원을 보호하다
7. 나무를 심는 일, 사람을 지키고 지구를 지키는 일
왕가리 마타이 연보
죽어가는 땅에 나무를 심고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여자아이는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었지만 왕가리는 가족 덕분에 대학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왕가리는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유학까지 갈 수 있었고, 동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 후, 왕가리는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케냐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고국에 돌아온 왕가리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케냐가 식민 지배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케냐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가난으로 더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왕가리는 케냐 여성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무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잘 가꿀 때마다 보상금을 주어 경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왕가리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나무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자신의 삶을 보호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입니다.
온갖 시련을 견뎌내며 독재 권력에 맞서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케냐 정부는 대니얼 아랍 모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독재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부유층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1990년, 케냐 정부는 나이로비에 있는 우후루 공원에 고층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왕가리는 국민들의 휴식처인 우후루 공원을 훼손하는 것은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들과 힘을 모아 정부에 맞서 반대 운동을 추진한 왕가리는 나이로비 대학 교수 자리를 잃었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큰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왕가리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압력이 계속될수록 왕가리는 환경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고,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권리를 빼앗는 정부를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왕가리는 국민들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2002년 그녀는 98%의 지지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