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고대 중국의 뼈대
이끄는 말 ‘중국’이란 두 글자는 3천 년 전에 출현했다 10
제1장 강역 _ 중국인이 생활하는 땅
제1절 ‘거대한 구주[大九州]’와 ‘한 자 길이 방망이[一尺之]’ 18
제2절 고대 중국은 도대체 얼마나 컸나? 26
제3절 고대 중국의 강역은 어떻게 변화했나? 33
제4절 고대 중앙정부는 어떻게 주요 행정 구역을 나눴나? 42
제2장 도시 _ 몇 차례 변화를 겪은 도성
제1절 한나라의 장안과 낙양 50
제2절 북위 효문제의 천도와 한족화 58
제3절 수·당 시대의 양도 66
제4절 명나라의 양경 병행 75
제3장 건설 _ 토지의 연결과 분리
제1절 장성은 군사 방어용으로만 세운 것이 아니다 83
제2절 식량 공급의 생명선, 운하 91
제3절 고대의 교통 시스템, 치도 99
제4절 부패에 의해 ‘잠식된’ 역참 106
제2편 고대 중국의 혈육
이끄는 말 본적과 출생지: 당신은 어디 사람이오? 116
제4장 이주 _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에 머무나?
제1절 고향은 어디인가? 이주의 출발지 125
제2절 이주민의 영향을 깊게 받은 도성 문화 구조 133
제3절 강호의 남쪽 이주와 오호의 중원 교란 141
제4절 유목 부족의 북방 이주와 흉노의 남하 약탈 149
제5절 고대인은 왜 이주해야 했나? 157
제5장 인구 _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는 인구수
제1절 고대 중국의 인구는 도대체 얼마였나? 166
제2절 정절 관념과 당나라의 과부 개가 174
제3절 송나라 호구 자료에는 왜 호구당 평균 인구가 3명에 미치지 못했을까? 182
제4절 명나라 호적제도와 10년 뒤 호적부를 미리 편집한 일 189
제6장 인물 _ 인간이 ‘주조’한 시대 현상
제1절 공자: 역대 통치자들이 긍정한 ‘춘추필법’ 198
제2절 복생: 문화의 보호자 겸 계승자 206
제3절 해서: 왜 해서 한 사람만 청백리가 되었나? 214
제4절 왕이: 비정규 막료가 정식 관리를 통솔한
우리는 중국의 역사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계 몇 대 문명 중에서 중국 문명은 가장 일찍 발생했다고 말할 수 없다. 중국의 갑골문은 지금부터 3,700년 전에 출현했으므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의 고문자 중에서 최초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중국인이 갑골문을 사용한 이후 계속 전해진 한자로 역사를 기록한 전통은 거의 중단된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중국 문명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임이 확실하다. 다른 문명을 살펴보면 어떤 곳은 역사 기록이 아주 일찍 중단되었고 어떤 곳은 문자가 일찍이 죽은 문자가 되었지만, 중국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역사서를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십사사(二十四史’의 분량은 3,300권 2,400만 자에 달하고 『자치통감』은 294권 300여만 자에 달한다. 이외에도 분량이 아주 큰 역사서가 매우 많은데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왜 고대 화하(華夏 사람들은 역사를 중시했을까? 한 가지 학설이 있다. “그 나라를 멸망시키려면 먼저 그 역사를 없애라.” 나는 일찍이 우리 대학원생들과 이 문제를 토론한 적이 있다. 어떤 학생은 역사서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역사서를 훼손하거나 전승을 끊어버린다고 설마 국가가 멸망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명확한 인식을 갖지 못했다. 역사서가 없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조사하고 연구한 뒤 다시 역사를 쓸 수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자. 역사 기록이 없으면 물론 큰 손실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찌 국가가 멸망할 수 있겠는가?그 학생은 중국의 최초 역사서 및 그로부터 형성된 전통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기실 최초의 역사 기록은 후세 사람이 보라고 쓴 것이 결코 아니며 또 오늘날 우리 역사 연구자나 역사 이해자를 위해 제공된 자료가 아니었다. 그렇게 막대한 정력을 써서 전문적인 사관이 역사를 기록한 목적은 하늘, 신, 조상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갑골문 중에서 많은 내용은 무당이 기록한 것이고 오직 무당만이 하늘, 신, 조상과 소통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