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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프란츠 슈베르트
저자 한스-요아힘 힌리히센
출판사 프란츠
출판일 2019-01-31
정가 17,000원
ISBN 9791195949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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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슈베르트의 빈
음악도시 빈
창작의 버팀목이 된 친구 그룹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
비더마이어와 3월 혁명 이전기 사이: 음악적 사교 문화

2. 최초의 시도들과 대가의 기운
장르의 체계적인 섭렵
첫 번째 상징: 슈베르트의 가곡
초기 교향곡과 그 배경

3. 위기, 돌파, 자기 결정
베토벤 위기
많은 단편斷片들
미완성 속의 완벽함

4. 비운의 사랑: 음악극
징슈필에서 ‘영웅적, 낭만적 오페라’로
무대의 성공과 무너진 희망

5. 대중을 위한 작곡
대大교향곡을 향하여
실내악과 교향곡
작품 의뢰와 신앙고백 사이

6. 젊은 작곡가의 후기작
대규모 연가곡
미지의 작곡 세계와 마지막 프로젝트
뒤늦은 자각: 슈베르트와 출판업자들

7. 에필로그: 슈베르트 수용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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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생애를 바라보는 이들의 해묵은 편견과 클리셰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에 이어 도래한 왕정복고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가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탁월한 감수성과 “음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많은 명곡을 창조해낸 프란츠 슈베르트가 음악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슈베르트의 작품 세계는 여러 가지 편견 속에서 일부 측면만 부각되어왔고, 그의 전기들 또한 클리셰로 뒤덮여 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의 음악학 교수 한스-요아힘 힌리히센은 이를 두고, “슈베르트는 19세기 후반에 도시성벽이 철거되고 링슈트라세(순환도로가 새로 들어서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옛 빈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엄격한 통제와 검열이 판을 치던 사회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멀리하고 소시민적 안락함을 추구하던 이른바 ‘비더마이어’적 풍조를 대표하는 예술가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은 것이다. 슈베르트와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이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수십 년이 지나 당시를 회고하면서 어느 정도 미화를 한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빼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한 ‘가곡 작곡가’라는 슈베르트의 명성이 너무나 큰 나머지, 교향곡, 현악 4중주,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 남긴 불멸의 기악 유산은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친구들의 힘을 믿고 프리랜서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슈베르트가 태어난 1797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이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걸출한 음악가들의 활동 무대로 각광받는 음악의 도시로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이른바 ‘빈 고전주의’ 시대를 지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열린 빈 회의 이후 밀어닥친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음악계 또한 새로운 토대 위에 놓이게 되었다.
1800년 이전의 음악 생활이 대체로 귀족이 주도하는 소수 중심의 활동이었다면, 이제 음악은 시민계급의 주도 아래 가정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