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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김구응 열사 평전 : 4·1 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저자 전해주
출판사 틈새의시간
출판일 2023-04-01
정가 15,000원
ISBN 9791197878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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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말_김종수(김구응열사기념사업회 회장
기획자의 말_이용길(천안역사문화연구회 회장
기획자의 말_김운식(김구응 열사 손자
추천사_김지철(충청남도교육감
추천사_한시준(천안독립기념관장
추천사_유낙준(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저자의 말_전해주

1장 김구응, 그는 누구인가
김구응 선생의 뿌리를 찾아서 / 진천 시절, 근대 교육의 세례를 받다 / 병천 시절, 아우내만세운동의 터를 닦다 / 김구응과 그의 가족들

2장 성공회와 진명학교
충남 병천에 기독교가 들어오다 / 성공회 선교의 시작 / 성공회 선교의 특징

3장 그날의 함성
그해 그날의 3운동 / 아우내(병천에는 김구응 선생이 있었다 / 김구응, 만세운동의 주역 / 아우내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하다 / 아우내만세운동의 현장

4장 아우내만세운동에 대한 평가
성공회의 3운동에 대한 입장과 분위기 / 후손들의 삶과 ‘김구응기념사업회’

<꺼지지 않는 아우내의 횃불>_이윤옥
참고문헌 및 기타 자료 출처
김구응은 누구인가?

김구응 선생은 1887년에 태어나 대한제국 시기에 진천면 서기관과 입장면 서기관으로 재직했지만, 1908년 사임하고 고향인 병천에 청신의숙(靑新義塾을 설립한다. 민중을 깨우치는 일만이 나라가 살길이라고 보고 교육에 투신한 것이다. 이후 선생은 1908년부터 1915년까지 청신의숙을 운영했고, 기독교계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던 장명학교에서 1915년부터 1918년까지 교사로 근무한다. 이때 가르친 이 중에 조병옥 박사의 당질로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 이유로 8개월 형을 받은 조만형 선생과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 등이 있다. 1918년부터 1919년 4월 1일 운명하기 전까지 선생은 성공회에서 운영하던 진명학교에서 선생으로 재직했다. 선생은 서울에서 일어난 3·1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동네 유지인 조인원 선생 등을 위시해 성공회의 청·장년 신자들과 아우내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논의했다. 3월 13일, 서울에서 내려온 유관순 열사도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전한다. 이에 김구응 선생은 유관순 열사와 지역의 교인·학생들을 동원하여 진명학교와 성공회 등에서 수백 장의 태극기를 밤낮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1919년 4월 1일(음력 3·1 아우내장터에 약 삼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자 선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에 앞장서다 현장에서 순국했다.

우리가 김구응 열사에게 주목하는 이유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구응 선생은 천원군 동부 6개 면을 위시하여 오창 등 각지와 비밀 연락망을 짜고 봉화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총궐기하도록 밀령을 전달했다. 그는 또 “유관순 열사에게 ‘나이 어린 여학생이니 일경(日警의 눈에 띌 염려가 없다’며 태극기의 제작과 연락책 임무를 맡겼다”(1991.3.1.중앙일보. 유관순 열사가 연락책이자 봉화 책임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면 선생은 전체 계획을 짠 지도자였다. 선생이 1919년 4월 1일 아우내4·1독립만세운동으로 순국했을 때의 나이는 32세였다. 그 뒤로 26년의 세월이 흘러 한국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