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전범재판과 과거 청산, 민주 선거가 있었던 1946년의 가을, 스웨덴 일간지 『엑스프레센(Expressen』은 전후 독일을 취재하기 위한 특파원으로 한 젊은 작가를 지명한다. 그는 바로 1945년 문단의 찬사를 받은 장편소설 『뱀(Ormen』으로 데뷔한 스티그 다게르만(Stig Dagerman, 1923-1954이었다. 그가 선택된 이유는 간단했다. 반파시즘에 앞장섰던 젊은 작가였고,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웨덴으로 온 독일 출신 여성과 결혼한 덕분에 독일어가 능통했으며 무엇보다 스티그 다게르만이라면 완전히 다른 보도 기사가 나올 거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열차로 출발해 덴마크를 거쳐 1946년 10월 15일 저녁 함부르크에 도착한 그는 약 두 달 동안 독일을 돌아다녔다. 주요 방문 도시는 함부르크, 베를린, 하노버, 뒤셀도르프, 쾰른,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슈투트가르트, 뮌헨, 뉘른베르크, 다름슈타트였다. 독일 내의 영국과 미국 점령지역을 오가며 그는 좌파 생존자들, 난민, 나치를 지지했던 민간인, 연합군에 고용된 사람들과 길을 잃은 젊은이들까지 광범위한 독일 시민들이 가진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정치 집회와 과거 청산 법정도 평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장소였다.
다게르만은 독일 현지에 아내의 친척들이 있었다. 장인의 어머니와 누이는 라벤스브뤼크 수용소 생존자였다. 그는 표면상 친척 방문을 목적으로 독일을 광범위하게 누볐다. 때문에 외부의 간섭이나 검열 없이 자신이 겪은 그대로 보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던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당신들은 그래도 싸다’ 같은 태도는 전혀 없었다. 그저 그들의 삶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했을 뿐이다.
전차가 출발할 때 큼직한 감자 자루를 든 키 작은 노파가 승강장에 올라왔다. 전차가 덜컹거리며 우리들을 지나고 자루에 든 감자가 다리 위 차도를 둥둥거리며 두드리다가 감자 자루가 엎어지면서 자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