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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 (양장
저자 와타나베 노부유키
출판사 삼인
출판일 2023-03-31
정가 18,000원
ISBN 978896436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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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제1장 징용공 소송
1. 징용공을 둘러싼 대립
2. “일본의 조선 지배는 불법이었다”
3. 한반도에서 무엇을 했는가?
제2장 동학농민전쟁
1. 숨겨진 역사
2. 일본군 수뇌부의 철저한 의도
제3장 관동대지진
1. 강해지는 주장, “학살은 없었다”
2. 어린이들이 본 요코하마 지진
3. 왜 유언비어를 믿었을까?
제4장 두 학살을 연결하는 선
1. 일본군 병사의 실상
2. 정체불명의 적
제5장 잊힌 과거
1. 개찬된 『일청전사』
2. 전쟁사 개찬의 진상
제6장 3.1운동
1. 새로 발견된 자료
2. 하라 다카시 총리와 조선총독부의 대응
제7장 모호한 자화상
1. 없었던 일로 치부된 학살
2. ‘갑자기 탄생한’ 자경단
제8장 여러 개의 전후
1. 말할 수 없는 전장 체험
2. ‘일본인의 마음의 틈을 겨냥한 속임수
제9장 다음 시대를 전망하는 역사상의 힌트

맺음말
옮긴이의 말
자료
참고문헌
찾아보기
일본인의 시야에서 벗어난 역사들

와타나베 노부유키가 한일 역사 인식의 차이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징용공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의 골격이기도 한 ‘한국병합은 무효이자 불법’이라는 논리다. 이는 일본인으로서는 ‘헛소리’로 들릴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이태진 교수가 말한 병합을 위한 일본의 “분명히 계산된 지속적인 노력”이 무엇인지 사료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동학농민전쟁의 ‘의병’이란 존재와 마주한다. “일본군의 의병 토벌은 1911년까지 계속되었다. 그간의 전투 횟수는 총 2,852회이며, 일본군은 1만 7,779명의 폭도를 살육했고, 일본군 전사자는 136명이었다. 싸움이 가장 치열했던 1908년에는 1,451회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의병 1만 1,562명을 살육했다. 다시 말해, 1908년 한 해 동안 한반도 어딘가에서 매일 평균 4회의 전투가 벌어졌고, 30명 정도의 의병이 살해된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일본인은 얼마나 될까? 부끄럽지만 나는 몰랐다.” 그는 의병 토벌대로 참여한 한 일본군의 종군일지를 살피며 한반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되살려낸다.

다음은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사건이다. 이 역시 많은 일본인이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다. 저자는 지진 재해 당시 소학교 아이들이 쓴 작문 등의 자료를 찾아 그 현장 상황을 생생히 복원한다. “많은 사람이 조선인을 다리 위에서 칼로 베거나 쇠몽둥이로 때리고 창으로 찔렀다. 결국에는 강물에 던져버렸다.” “한 사람이 쇠갈고리로 놈의 머리를 찍어 나룻배로 끌어당겼어요. 마치 목재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어요. (… 쇠갈고리 한 방으로 이미 죽은 놈을 다시 칼로 베고 죽창으로 찔렀어요.”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학농민전쟁과 관동대지진이라는 두 학살을 연결하는 고리를 찾아낸다. 그 가해자인 후비역 병사와 재향군인회 그리고 그들이 속한 자경단에 대해 당시 사회적인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