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마환의 출신은 회계(會稽이고, 자는 종도이며, 정화의 원정에 3차례(3차, 4차, 7차에 걸쳐 통역관 자격으로 수행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마환은 이슬람교도로, ‘곽숭례’라는 사람과 동행하여 20여 개국에 관한 해외 정보를 기록했다. 책의 제목은 <영애승람>이고, 한 시기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1416년부터 1433년에 걸쳐 추가되고 교정되어, 1444~1451년에 완성본이 나왔다. 그러나 마환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16세기 이후 총서에 수록된 판본으로만 원서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명나라 초기의 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 이 역주서는 판본들 중의 가장 권위 있는 풍승균(핑청쥔, 馮承鈞의 교주본인 『영애승람교주(瀛涯勝覽校註』(商務印書館, 1935 간행를 역주한 것이다.
책 속에서
옛날 소하(蕭何, 기원전 193년 죽음가 관중(關中에 들어와 오로지 서적을 수습한 일과, 방현령(房玄齡, 579~648이 성을 차지하고는 유독 인물들을 사가(史家들에게 기록하게 한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다. 우리 왕조 태종문황제(太宗文皇帝, 영락제와 선종장황제(宣宗章皇帝, 선덕제 모두 태감 정화(鄭和에게 걸출한 사람들을 통솔하여 해외로 넘어가 여러 나라와 교역하도록 하였다. [그 사신단에 참가한] 인물들의 위대함, 선박들의 웅장함, 재예(才藝의 뛰어남은 이전에 없었다. 그렇지만 두 황제의 마음이 어찌 먼 곳에 많음을 과시하고 화려함을 다투고자 하는 것이었겠는가. 대저 [왕조의] 명성이 오랑캐들에게 미쳐, 온 천하의 생명이 있는 것들이 모두 덕으로 교화됨을 입고, 군주가 있어야 부모를 존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명을 받들어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 그 일을 마치고 그 뜻을 일컬을 만한 자로 우리 산음(山陰의 종도(宗道 마공(馬公을 빼면 누가 있으리오. 공은 재간이 더욱 풍부하여 이러한 선발에 맨 먼저 부응하여 세 번씩이나 바다로 나가 여러 나라를 편력했다. 금, 비단, 보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