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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의 한살림공동체, 김지하의 생명주의,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날 제정
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에서 영향 받아
한국 생명운동의 효시이자 한살림공동체의 설립자인 무위당 장일순이 해월 최시형의 동학사상을 모델로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소파 방정환이 1923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 선언’과 ‘어린이날’을 제정할 수 있던 것이나, 김지하 시인의 ‘생명주의’ 철학 역시 해월 최시형이 정립한 동학사상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
동학사상을 오늘날까지 이르게 한 해월 최시형은 동학의 2세 교조로서, 관군의 추적을 피해 무려 35년간이나 은둔생활을 하며 동학사상을 체계화하고 전파 했으며, 결국 ‘좌도난정’의 죄를 물어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동학이 인간의 평등과 만물의 소중함을 중요한 교리로 삼았기 때문에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조선의 봉건체제에 대립될 수밖에 없었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뿐 아니라, 해월 최시형 역시 관군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당연했다.
동학사상은 모든 가치의 최우선으로 ‘생명’을 이야기했다. 여전히 핵전쟁의 위기에서 안전할 수 없는 한반도 안보 위기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환경의 파괴문제 등은 모두 이 땅의 생명체를 파멸시키는 위험요소다. 해월 최시형은 이미 100년 전 자연과 환경 생태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무고히 해치지 말라. 만물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자는 사람을 존중하지 못한 것과 같다.”
오늘날 해월 최시형의 사상은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의 위기에 소중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 《해월 최시형 평전》은 그의 일대기와 그의 철학사상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소개함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스승으로서 해월 최시형의 삶을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