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01 쇠고기
1. 삼한에서 고려까지
● 삼한과 삼국시대
● 고려
원 간섭기 이후
2. 조선 전기
● 금도령과 ‘달단 화척’
● 불법 도축과 쇠고기 소비의 증가
3. 조선 후기
● 서울의 사도
● 지방 사도
● 관포
국가가 설치한 공식 관포|국가가 묵인한 지방의 관포
● 법의 무력화
02 반인
1. 반촌
2. 반인
● 반인의 유래
● 반인의 수
● 반인의 노역
3. 반주인
4. 반인의 성격과 문화
● 반인의 언어와 폭력적 성향
● 반인의 지식과 한시 문학 및 예술
03 성균관과 삼법사
1. 성균관
● 조선 전기 성균관의 재정
● 임병양란 이후 재정의 붕괴
임병양란 이후 재정 상황|성균관의 재정 수요|성균관의 토지|성균관의 절수 어장|노비신공
2. 삼법사
● 삼법사와 속전
● 이예와 금란
04 현방
1. 반인과 도축업
● 반인의 생계수단
● 반인과 소의 도축
2. 현방
● 현방의 출현 시기
● 현방의 수와 위치
● 현방의 구성과 구성원
● 소의 도축 방법과 부산물
05 수탈
1. 속목, 속전과 1707년의 감축
2. 사헌부 속전의 복구와 성균관의 현방 수탈
3. 1712년 현방의 빚과 공금 대출의 시작
4. 삼법사의 본격적 수탈의 전개
● 1724년 삼법사 속전 감면 요청의 실패와 공금의 대출
● 1728년 조지빈의 상소, 궁핍해지는 반인과 성균관
● 삼법사 속전 감축 요구와 반복된 실패
대사성 정우량, 김상규, 김약로, 서종옥의 요청과 좌절|1740년 대사성 심성희의 해결책 제안|왕과 조정의 무능과 책임 회피
● 1750년 균역청 설치 이후의 사정
● 1812년 궐공과 대책의 실패
5. 새로운 수탈의 주체, 궁방
6. 명문화된 대책, 〈현방구폐절목〉
● 1857년 〈현방구폐절목〉
● 1862년 〈현방구폐절목〉
06 대응
1. 현방의 확장과 첩도
● 현방의 확장
● 첩도
2. 건전과 창전, 우방전
● 건전
● 창전
● 우방
눈이 번쩍 뜨일 뜻밖의 사실
조선은 내내 소의 도축을 금하고, 쇠고기를 먹은 사람까지 처벌했다. 원칙적으로 그랬다. 하지만 17세기에 서울에는 속전을 물고 쇠고기를 파는 ‘현방’이 공공연히 존재했다. 책은 현방을 운영하던 반인泮人과 이들이 살던 반촌 이야기를 촘촘히 풀어간다. 성균관 주변의 ‘반촌’에 살던 그들이 고려 시대 성리학을 처음 전한 안향이 기증한 노비에 뿌리를 두었다든가, ‘제업문회’란 일종의 학교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는 등 여느 역사책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실을 소개한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반인들이 자비로 무장을 갖추고 참전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 반인들은 1년에 여섯 달을 입역하고, 7~8세부터 입역하는가 하면 성균관 유생들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봉사했다는 수탈상도 그려진다. 노예들이 기록을 남겼을 리 없으니 다양한 사료를 꼼꼼히 뒤져낸 공력이 감탄스럽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음식문화 중심에 쇠고기가 있었으니 불교국가인 고려에서도 개성 시전에서 고기를 팔았다든가, 18세기 조선에선 해마다 약 20만 마리의 소가 도축되는 ‘쇠고기 국가’였다는 사실 등도 만날 수 있다.
무릎을 칠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
반인들이 수탈의 대상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단다. 성균관과 일종의 경제공동체가 되어 삼법사의 수탈에 반발하기도 했고, 유생들이나 과거를 치러온 이들이 묵는 여각의 주인은 ‘반주인’이라 하여 과거 합격 잔치를 반주인 집에서 치르는 등 내내 이익을 공유했다. 과도한 ‘세금’을 피해 생계를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등장한다. 반인들이 얼음 판매업을 독점하려 ‘빙계’를 만든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조선 후기에 육류·어류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여름철에 육류·어류의 부패를 막기 위해 국가는 물론이고 의열궁義烈宮이나 성균관에서도 얼음이 부족하면 사빙을 사서 썼다. 반인은 1768년 빙계氷契를 조직하여 사빙私氷을 독점하고자 했다. 빙계가 창설되기 전에 경강변에는 사빙업자가 30~40곳 있었기에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1789년 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