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출전: 오바라 구니요시(小原國芳 외(1976. 『8대 교육주장(八大敎育主張』, 다마가와대학출판부(玉川大學出版部.
1. 이 책은 아마코 도도무(尼子止: ?~1937가 편찬하고 대일본학술협회 발행의 『八大敎育主張』(1922.01.08.을 교정·복각한 것이다.
2. 다만 각 편의 배열은 1921년 8월 『8대교육주장(八大敎育主張』
대회에서 원래 강연하였던 순서로 바꾸었다.
3. 한자는 당용(當用 한자를 사용하였다. 원문에서 확실하게 오류라고 생각되는 것은 정정(訂正하였다. 또한 구두점이 명백하게 결락(缺落되어 있는 내용에 한해 이를 보완하였다.
4. 서문과 각 장의 가장 마지막에는 각기 ‘해설’을 추가하였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복각(復刻에 즈음하여
오바라 구니요시(小原國芳
다마가와대학 총장
제1차 세계대전은 세계의 교육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전쟁에서 패한 독일은 곧바로 바이마르에 국민대학을 설립하였다. 각지에서 모여든 800명의 국민 대표는 “무엇으로 국가를 부흥시킬 것인가”를 토의하였다. “그것은 교육”이라고 만장일치 되었고, “어떠한 교육인가?”에 대하여는 “그것은 실험학교(Versuchsshule”라고 정해졌다. 일본에서는 이를 ‘시행교육(試行敎育’으로 번역하였다. 이해도 못하면서 기계적으로 외우는 주입식 방식이 아니라 시도하고, 행해보고, 직접 해보고, 부지런히 움직여보는 것이다. 우리들이 몇 년 동안 주장하여 온 노작교육이며, 창조교육이다.
일본에서도 커다란 반향이 일어났다. 1922년(大正11 사와야나기 마사타로(澤柳政太郞: 1865~1927 박사는 몇몇 학자들을 이끌고 1년간 구미의 신교육 시찰에 나섰다. (이 같은 『세계교육행각(世界敎育行脚』은 일본교육에 큰 자극을 주었다. 이보다 앞서 세이조(成城 소학교의 신교육은 이미 시작되었었다. 이어서 다마가와학원(玉川學園을 비롯하여, 아카시(明石 부속소학교, 지유학원(自由學園, 나가노(長野 부속소학교, 지바(千葉 부속소학교, 나라(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