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는 히포크라테스의 후예가 아니다
대가들의 책을 불태운 이단자│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
고루한 왕당파, 혁신적인 의학자│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
손 씻기가 불러온 기적│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 1818~1865
광견병을 정복한 국수주의자│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
공용 펌프를 폐기하라│존 스노(John Snow, 1813~1858
마법 탄환을 찾아서│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1915
장티푸스를 퇴치한 꼰대│암로스 라이트(Almroth Wright, 1861~1947
드디어 완성된 마법 탄환│게르하르트 도마크(Gerhard Domagk, 1895~1964
태양을 특허 낼 수 있습니까?│조너스 소크(Jonas Salk, 1914~1995
우선순위를 정하라│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Jean Larrey, 1766~1842
모세가 되고 싶었던 남자│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낙태를 용인한 보수주의자│찰스 에버렛 쿱(Charles Everett Koop, 1916~2013
히포크라테스 사후 약 2000년,
그의 이론에 반기를 든 사내가 나타났다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히포크라테스. 하지만 저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의사의 직업 윤리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닐 뿐, 현대 의학의 진정한 아버지는 바젤 대학 정문에서 대가들의 서적을 불태운 반항하는 의사, 파라켈수스다.’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모든 물질이 불, 물, 흙, 공기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원소설에 근거하여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 인간의 몸을 구성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체액설은 갈레노스와 이븐 시나에 의해 의학계에서 철옹성 같은 권위를 획득하였다.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를 때까지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체액이 부족하고 어느 체액이 지나치게 많은지 설명하는 것에 골몰했다. 치료법 역시 혈액이 지나치게 많은 병이면 사혈 요법을 시행하고 혈액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고기를 먹도록 지시하는 식이었다.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테오프라스투스 봄바스투스 폰 호엔하임이라는 긴 본명보다 파라켈수스라는 별명이 훨씬 유명한 한 사내가 이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당대의 다른 의사와 달리 환자 곁에서 세밀하게 증상을 관찰하면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백 년 전의 케케묵은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이발소 외과 의사, 산파, 약초꾼 같은 사람을 불러 경험을 나누게 했다. 급기야 1527년 6월 24일, 갈레노스와 이븐 시나의 책을 불태우기에 이른다.
이단자 파라켈수스가 ‘기적의 치료자’로 불리운 까닭
바젤 대학에서 추방당한 파라켈수스는 방랑하며 진료와 연구를 계속한다. 그의 연구 결과는 갈레노스와 이븐 시나에 반하는 것이라 의료계에서 그의 악명은 커져만 갔다. 반면 임상의로서 파라켈수스는 ‘기적의 치료자’라 불리며 큰 명성을 얻는다. 그가 기적의 치료자라 불린 이유는 다른 의사와 달리 환자를 자세히 관찰하고 증상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약을 투여했고 사혈 요법 같은 무의미한 치료를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