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프롤로그
1. 프랑스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
2. 네팔 | 전통 가락을 심다
3. 미국 | 어느 광고인의 유산
4. 일본 | 국가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
5. 카자흐스탄 | 독재자가 직접 쓴 국가
6. 리히텐슈타인과 영국 | 다른 노래의 곡조를 가져온 국가
7.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가사가 필요한 국가
8. 이슬람 국가(IS | 지하드의 노래
9. 이집트 | 국가와 명성
10. 남아프리카 공화국 | 한 곡에 담긴 다섯 개 언어
11. 파라과이 | 국민 오페라
에필로그 | 국가를 쓰는 데 실패하는 방법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한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55초짜리 노래, 일본의 ‘기미가요’ 논쟁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논쟁의 최전선에 있는 노래, 국가
1999년 정년퇴직을 앞둔 일본의 한 고등학교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에는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인들 중에는 전쟁을 반성하고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국가주의를 표상하는 상징물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을 반대했다. 학생들을 전쟁을 내몰았던 교사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일본에서는 학교에서 국가를 연주할 때 아무도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이 점차 우경화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교육청에서는 교장에게 졸업식에서 국가를 연주할 때 교사들을 기립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교사들은 거부했다. 교장은 이 대립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기미가요는 7세기부터 내려온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곡을 붙인 사람은 영국인 관악대 대장이었던 존 윌리엄 펜튼이다. 1869년에 만들어진 이 노래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기미가요를 둘러싼 논쟁은 이 노래의 가사가 실제로는 군국주의와는 상관이 없는 일왕의 치세를 찬양하는 내용이라는 데 있다. 지금 세대는 이 노래와 전쟁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이 노래를 듣고 전쟁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더 윗세대다. 지금 세대는 이 노래에 거부감이 없다.
하나의 노래를 두고 세대 간의 기억이 갈린다. 누군가에게는 학생들을 전쟁을 내몬 끔찍한 노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 없는 55초짜리 지루한 노래에 불과하다. 기미가요를 둘러싼 논쟁은 국가가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런 사례는 일본뿐 아니라 새로 건국된 국가, 내전이나 혁명을 겪은 국가 등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격은 나라들에서도 발견된다. 이런 변화를 겪은 나라들은 그 이후 세대와 공유하는 기억과 경험이 다르다. 따라서 국가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