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틀어 ‘가야’라고 묶어 부르기는 하지만, 여러 지역별로 작은 정치체들이 제각기 존재하였다. 대가야, 금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등이다. 이들 정치체들이 통합되지 않은 채 오래 이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학계에 이견이 없다. 과거에는 이들을 막연히 묶어서 ‘연맹체’로 설명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심이 옮겨갔다고 보고 전기 연맹, 후기 연맹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백제·신라나 왜를 대상으로, 한반도 동남부 지방의 각 정치체가 연맹이라고 할 만한 통일된 움직임을 보였는가에 회의적 견해가 많다. 오래된 가야사 이해가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인 것이다. 또 한국 고대사의 큰 흐름을 감안할 때, 가야의 여러 정치체들이 어느 시기에 소멸하는가 하는 점도 문제이다. 그러나 고고자료의 양상이 해당 정치체가 독자성을 유지한 흔적인지, 이미 신라의 일부로 편입된 상태임을 보여주는지, 백제의 일부로 기울어질 여지는 없는지 등에 대해 판단이 엇갈린다. 신라나 백제에 흡수되었다는 결과적 해석에 머물지 않고, 가야 각 정치체들의 역동성을 온전히 복원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과제이다. 이 정치체들이 더 큰 규모로 통합되지 못한 배경과 조건·원인을 해명해야 하지만 미흡한 상황이다.
한국고대사학회는 문헌기록을 주로 활용하는 역사 연구자는 물론, 고고자료를 다루는 고고학 연구자를 아울러 가야사에 관한 학술회의를 꾸준히 열었다. 쟁점이 되는 문제에 공감대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연구가 더욱 쌓이면 일정한 이해 방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학회 차원의 노력을 이어갈 생각이다. 가야사 연구는 역사학과 고고학이 힘을 합쳐 소통하면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쪽의 연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