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법칙을 증명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근대의 과학 혁명을 이끌었다
《방법서설》은 이후 수많은 지식인과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데카르트의 명성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당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천체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여 지동설을 증명하려 했으나 로마의 종교 재판소에 의해 이단행위로 재판을 받는 등 기독교적 세계관과 과학 혁명의 충돌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자연에 관한 진리 탐구는 논리학, 기하학,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신과 인간 영혼의 실재를 입증하려는 형이상학적 연구에까지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과 육체는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제4부에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분리된 객체로 다루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데카르트는 물질을 정신에서 분리시키고 자연계의 만물을 오직 운동성과 연장성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이런 견해는 훗날 뉴턴(1643~1727의 역학운동의 법칙으로 증명되어 근대 과학 혁명의 근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