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를 돌아보다 | 프롤로그
제1부 개항기
1 조선의 개항과 일본의 생존
2 과연 당백전이 원흉이었을까
3 돈으로 무너지는 조선
4 쌀을 내놓아라
5 대응을 안 한 것일까 못 한 것일까
6 황금의 땅 조선과 ‘지팡구’
제2부 침략기
7 탐관오리들의 역할
8 세금을 모두 돈으로 내면 개혁인가
9 조선과 일본의 이상한 합작품 ‘백동화’
10 조선의 중앙은행이 된 다이이치은행
11 조선의 땅과 일본의 돈놀이
12 화폐정리 사업과 민족자본
제3부 강점기
13 일본인들의 근대적인 조선 농장
14 3·1 운동과 엉터리 자유시장경제
15 식민지 조선이 일본에게 가르쳐준 것
16 세계 대전쟁에 동원된 조선, 그리고 남은 것
지천명을 생각하다 | 에필로그
김준보 교수 저서 목록
참고문헌
도표 및 도판 일람표
쌀의 수출, 붕괴의 시작
[쌀에 관한 한, 조선은 일본의 창고다(71쪽.
국내 총생산 가운데 화폐의 양은 고작 3%에 불과했던 조선에서 화폐의 역할을 했던 것은 쌀과 면포였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조선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마땅한 수출품이 없었던 조선에서 이 화폐 대체품들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밀무역과 강제 개항으로 이루어진 이 과정에서 오히려 조선 경제에서 화폐의 역할은 커지기에 이른다. 이후 침략기와 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에서의 쌀 생산은 일본의 배만 불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풍년이 들어도 일본 상인들이 쌀을 가을에 모조리 사들이는 바람에,
조선에서는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는 쌀이 모자라서 일본에서 쌀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70쪽.
만약 조선인이 쌀 팔기를 거부하거나 난동을 부리거든 직접 대응하지 말고,
조용히 상대방을 붙잡아서 순찰 경관에게 인도하라(60쪽.
유출된 금, 무너진 안정성
일본을 위시한 열강의 압박 속에 수탈당하고 있던 조선이 반격을 꾀할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금광이었다. 평안북도 운산에 위치한 금광 지대는 동양 최대의 수익성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앞에서 본 쌀은 자국민이 먹고살기 위해 전국적으로 유통된다는 특징이 있어 통제하기 쉽지 않은 데 비해, 금은 수요의 목적이 아닐뿐더러 금광지대가 고정되어 있기에 개항 초기 조선 조정이 적극적이었다면 주요 금광에 대한 소유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역량도 의지도 없었던 조선 정부는 금광 개발을 개인에게 떠넘겨버렸고, 일본인들은 소유권이 명문화되는 것을 피해 지방 관리나 유력자 등을 내세워 본격적으로 금을 거래하게 된다.
최소 26톤의 금을 조선에서 더 들여왔으니, 일본은 신용 높은 금화를 더 많이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서 무기든 기계든 원료든 얼마든지 사올 수 있었고, 이는 일본 경제가 기존 금 보유량 대비 최소 69% 이상 조선의 금을 바탕으로 추가 성장했음을 의미했다(98쪽.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한 국가의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