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교회사의 생생하고도 입체적인 증언 기록
정민 교수의 충실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로 만난다
서학 도입기 조선 사회의 다각적 복원에 필요한 중요 사료가 마침내 공개된다. 18세기 조선 지성사를 깊이 탐구해온 고전학자 정민 교수가 번역하고 해제를 붙인 이재기(李在璣, 1759~1818의 《눌암기략(訥菴記略》이 완역 출간되었다. 그간 학계와 교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문헌의 사료적 가치를 명료하게 밝히고, 수백 개의 주석을 통해 불분명했던 수많은 인명의 인적 사항을 정리했으며, 교차 검증의 편의를 위해 원문 영인본을 수록했다. 무엇보다 다른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내용들을 새롭게 발굴·소개했다.
이 책은 채제공의 실각과 복권 과정에서 서학을 두고 벌어진 남인 내부의 정쟁과 대립을 양비론적 시각에서 치밀하게 고발한 기록이다. 서학 문제를 신앙과 신념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적 맥락에서 살핀 점이 의미가 깊다. 남인의 분화와 갈등 원인, 신서파와 공서파의 세부 동선 및 정파의 길항 관계까지 서학에 대한 당대 인식을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송담유록》 《눌암기략》은 그간 학계에서 제대로 된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교회사뿐 아니라 당대 정치사의 흐름 이해와 남인의 위상 파악을 위해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귀한 자료다. 초기 교회사의 누락된 부분이 반서학의 입장을 지녔던 이들의 기록에 힘입어 충실하게 채워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_정민
서학을 중심으로 들여다본 18세기 조선의 정치 지형
척사의 기록에 담긴 초기 교회사
《눌암기략》은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다산 정약용을 오랜 시간 공부해온 정민 교수는 다산의 청년기와 천주교 신앙 문제를 다룬 《파란》을 집필하며 조선 사회에 서학이 끼친 영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조선에 서학 열풍을 일으킨 천주교 수양서 《칠극》을 번역했고, 이어서 초기 교회사 연구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를 집필했다. 그는 이러한 연구 여정 중에 《눌암기략》의 존재를 알게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