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사 3
서문 6
홍옥숙ㆍ김낙현|유럽인들의 조선 탐사 항해와 항해기-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까지
1. 유럽인들의 조선 탐사 항해와 선행연구 17
2. 19세기를 전후한 유럽인 항해자들의 북태평양 진출 22
3. 19세기 후반의 유럽인 방문자들과 조선의 개항 57
이영미|한국을 연구한 초기 개신교 ‘선교사 겸 학자(missionary and scholar’들
1. 개인에 대한 연구에서 집단에 대한 연구로 67
2. 19세기 말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구성과 특징 71
3. ‘선교사 겸 학자’들의 등장과 『리포지터리』 76
4. ‘선교사 겸 학자’들의 생애와 연구 활동 83
5. ‘선교사 겸 학자’들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93
이고은|번역과 선교-H. G. 언더우드의 중문 기독교문헌 번역(1886~1896
1. 내한 선교사들의 중문 기독교 문헌 번역 97
2. H. G. 언더우드의 번역서 목록과 번역 동기 102
3. 언더우드의 중문 전도문서 입수 경위 110
4. 언더우드와 번역자들, 그리고 번역서의 독자들 113
5. 언더우드의 번역서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 120
6. 향후 과제 124
이상현|프랑스 외교관이 남긴 한국학의 흔적-『한국서지』(1894~1896, 1901의 출간과 그 이후
1. 서울의 추억과 『한국서지』 127
2. 『한국서지』의 출간과 유럽 동양학자의 한국학 132
3. 『한국서지』 출간 이후 한국 개신교선교사의 한국학 154
4. 『한국서지』와 서양인 한국학의 현장 195
이영미|1900~1940년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와 서양인들의 한국연구
1.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탄생 203
2. ‘선교사 겸 학자’들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206
3. 트롤로프와 영국국교회 선교사들의 참여 215
4. 전문 연구자로서의 선교사 2세들 223
5. 서구 한국학과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231
홍미숙|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한국학 연구와 성과
1. 시작하며-에카르트
서구 학계에 한국을 포함시킨 서양인들―탐험가, 외교관, 그리고 선교사
1787년 5월 브로튼(William R. Broughton, 1762~1821의 팀을 위시한 여러 영국 탐험대가 한반도를 방문하였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파견을 받은 해군 탐험대로, 국책에 따라 미지의 지역을 조사하여 세계 지도를 완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통상을 개시하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기본적인 목표는 한반도와 인근 해안에 대한 지리적 탐사와 한국 및 한국인들에 대한 정보 습득이었다. 그들은 ‘지식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한국에 접근한 최초의 서양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1830년대부터 약 30년간 한반도에서는 소수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을 주제로 상당한 양의 기록을 생산하였다. 한국인들과 함께 길게는 10년 이상 한국에서 산 선교사들의 그것은 객관성과 정확성의 층위가 다양한 민족지학적 정보의 보고로, 한국을 깊이 알고자 하는 외부인들에게 오랫동안 필수적인 자료로 인정되었다. 그들이 탐험가들처럼 ‘지식의 추구’라는 차원에서 한국에 접근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한국에 대한 서구 세계의 지식과 정보가 그들에 의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현저히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 왕조가 일본 및 서양 국가들과 근대적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후 한국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계승한 사람들은 외교관과 선교사였다. 특히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내내 한국 연구를 주도한 것은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인 교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언어, 문화, 역사를 배우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잡지에 발표하거나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성장하였으며, 나중에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를 창립하여 연구발표회를 개최하고 학술지를 발행 및 보급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1930년 전후 독일과 미국에서 한국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강의와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구 제도권 한국학의 발판을 마련한 이 사람들은 거의 다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