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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정벌과 사대 :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과 대명의식
저자 이규철
출판사 역사비평사
출판일 2022-09-28
정가 28,000원
ISBN 978897696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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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부 태조대 대외정책 기조의 수립과 대마도·요동 정벌
1장 건국 후 대외정벌 정책 수립의 배경
2장 1396년 대마도 정벌의 의미
3장 건국 직후 대명관계와 요동 정벌의 추진

2부 태종대 대외정벌 정책의 추진과 시행
1장 태종대의 대명의식과 모련위 정벌
2장 1419년 대마도 정벌 이전 왜구의 활동과 명의 상황
3장 명의 정왜론에 대한 조선의 논의와 대마도 정벌

3부 세종대 대외정벌 정책의 본격화와 파저강 정벌
1장 파저강 정벌 이전의 국제정세
2장 여연 사건과 파저강 정벌의 결정
3장 파저강 정벌 단행과 조선의 대명의식
4장 파저강 재정벌의 준비와 단행
5장 영토 확장과 대외정벌의 위험성

4부 세조대 대외정벌 정책의 계승과 대명의식
1장 모련위 정벌의 의미와 대명의식
2장 건주위 정벌 단행과 명의 출병 요청

5부 성종대 대명의식 변화와 대외정벌 정책의 한계
1장 명의 출병 요청과 대명의식의 변화
2장 북정 실패와 왕권의 약화

결론
태조, 대외정책 기조를 수립하다
: 국익을 위해서라면 명도 공격할 수 있다

조선의 대외정책 기조는 이성계, 정도전과 같은 건국 핵심 세력의 주도하에 수립되었다. 그들은 공민왕대 대외정책의 시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공민왕대 추진되었던 대외정책 기조는 조선 건국 후에도 연결되었다. 조선은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태조의 터전이었던 동북면과 두만강 일대의 여진 추장들을 귀부시켜 압록강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자국의 영역을 설정했다. 하지만 여진 세력의 지배 문제는 조선과 명의 대립을 야기했다. 조선은 건국 후 왜구에 대해서 새 왕조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마도 정벌을 단행했다. 그리고 명과의 정면대결을 감수하면서까지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 비록 요동 정벌은 좌절되었으나 조선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명도 공격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태종, 대외정벌 정책을 추진하고 국제관계를 조율하다
: 대명관계 개선과 여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

왕자의 난을 통해 국정을 장악하고 왕위에 오른 태종은 태조대와는 달리 명과의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따라서 태종은 누구보다 사대명분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외교적 사안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여진 초유 문제에서는 명과 대립하는 양상도 보였다. 당시 조선은 여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명에 입조했던 동맹가첩목아 처리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대명외교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조선·여진·명 삼자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태종 10년 단행된 올적합 정벌은 모련위 지역에 대한 조선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행동이었다. 정벌의 시행과 이와 관련된 내용을 중국에 보고했던 조선의 태도를 통해, 태종의 집권으로 인해 대외정책의 방향이 변했지만 목표까지 변경된 것은 아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태조대의 대명 강경론자들이 북방 지역 경략을 위해서는 명과의 군사적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는 견해였던 것에 비해, 태종대에는 북방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