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가는 한말-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해갔을까?
이 책에서는 조선후기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양반지주들의 농업경영과 경제생활을 검토하기 위하여 두 양반지주가를 중심적으로 검토하였다. 하나는 경기도 군포의 속달지역에 세거해 온 동래정씨가이고, 다른 하나는 전라도 영광의 외간지역에 세거해 온 연안김씨가로, 이 두 가문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의 Ⅰ장과 Ⅱ장을 구성한다.
두 가문 모두 조선시대 중앙관직자를 일정하게 배출해 왔고, 지역 내에 경제적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운영해 온 집안이었다. 두 가문은 문중 내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동래정씨가는 조선전기의 명신으로 꼽히는 정난종(1433~1489을 불천위로 모시는 동래정씨가문의 대종택이었고, 연안김씨가는 영광의 연안김씨 가운데 외간 입향조의 종손가문이자 중앙관직 및 경제력의 측면에서 영광 및 그 일대 연안김씨문중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두 가문은 세거해 온 지역 내의 기원과 지위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가 존재했다. 동래정씨가 세거한 속달은 정난종의 사패지로 사후 이곳에 묻혔으며, 장자 정광보(1457~1524가 1500년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후 속달은 종택을 중심으로 동래정씨 방계와 소작인 등으로 구성된 강고한 씨족마을로 형성되었고, 종택은 사실상 속달의 주인으로 존재하였다. 반면 연안김씨가 외간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전반에 이르러서였으며, 임진왜란과 이로 인한 가족의 이산 등의 결과였다. 이후 지역의 명문가로 성장하기는 하였지만,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지위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특히 일대의 주요 지주로 발돋움한 것은 상당히 늦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였다.
이러한 두 가문의 지역 내 지위와 상황의 차이는 경제활동을 비롯한 두 가문의 존재양식에도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게 되었다. 조선후기와 대한제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동래정씨가의 활동이 대체로 속달의 주인으로서 속달과 문중의 경영이란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