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중세시대에 대한 흔한 오해들
중세시대란 어떤 것일까요?
암흑시대에 대한 오해
복잡했던 그 시대
파트 1: 로마 제국의 유산
로마의 몰락
로마의 후계자들
비잔티움 제국
황제 교황주의
파트 2: 초창기 종교들
이슬람교의 발흥
우상 파괴에 대한 논란
성자들
수도원 운동
파트 3: 제국의 부상과 황위
샤를마뉴
카롤링거 르네상스
교황 레오 3세와 교황수위권
알-안달루스
시칠리아와 해양 공화국
제해권을 손에 쥔 도시 국가들
바이킹
세상의 끝, 영국
오토 왕조
파트 4: 기원후 1000년, 그리고 사람들의 삶
종말에 대한 불안
오토 르네상스
귀족계층의 부상
도시의 대두
그레고리오 개혁
교회의 대분열
노르만 정복
레콘키스타(국토 회복 전쟁
1차 십자군 전쟁
반유대주의 폭력
안티오크 공성전
예루살렘 공성전
정복 이후의 십자군 국가들
파트 5: 중세 중기
대학의 탄생
4가지 체액설
12세기 르네상스
고딕 건축
교회와 교회법
또 다시 일어나는 십자군
궁정 연애 그리고 음유 시인
파트 6: 중세시대의 다른 사람들
여성
성매매 종사자
동성애자
유대인
이단자
나환자
파트 7: 중세 후기
흑사병
아비뇽 교황 시대
백 년 전쟁
중세의 전쟁
대분열
롤라드파
농민의 난
파트 8: 중세시대의 끝
잔 다르크와 백 년 전쟁의 끝
서방 교회 대분열의 끝
후스파
오스만의 부상과 콘스탄티노플의 몰락
레콘키스타(국토 회복 전쟁, 그라나다의 함락, 스페인 통일
아프리카로의 확장과 노예무역의 시작
유럽 전체의 예술운동과 르네상스 신화
결론
중세의 암흑이라는 오해와 그 속에 감춰진 찬란한 진실
중세 유럽의 시대는 보편적으로 476년 서로마가 게르만족 출신 장군 오도아케르의 손에 의해 멸망한 해부터를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그 끝은 아직까지도 여러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의견이 난립한 채 정확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체계적인 국가제도와 계몽적 사상문화가 등장한 18세기 초부터를 근대라고 상정할 경우, 유럽의 중세는 1,200년이 넘는 방대한 세월을 배경으로 한 격동의 시기였으며 그 안에는 교황권의 부상, 봉건제의 확립, 기사의 출현, 십자군을 통한 동서 문명의 교류, 대학의 탄생,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과 같이 서양사의 굵직한 줄기를 이룬 중요한 순간들이 찬란하게 뻗어 오늘날 서양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중세시대는 오랫동안 ’암흑시대‘라는 이명으로 함께 통용되어왔으며, 배타적인 기독교 세력과 경직된 봉건제도가 예술과 사상의 발전을 가로막고 사회를 정체시킨 퇴보의 시기였다고 대중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게 오늘날의 실정이다.
서로마의 멸망 이후 근대 시민국가의 사회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정말로 중세는 내내 암흑으로만 뒤덮여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중세 유럽은 서양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역동적이었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다양성의 시기였으며 현재의 서양문화와 사상의 기초가 다져진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다가 중세는 찬란한 변혁의 순간이 가득했던 진실을 뒤로 한 채 암흑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으며, 이러한 오해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사료부족의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오해의 시작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인의 중세 이야기》는 본격적인 중세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앞서 바로 이 근본적인 의문점에 대해서부터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암흑시대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두 명의 범인으로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와 뒷시대의 추기경이자 역사가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