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난 한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없을까?
나는 검고 높은 의자에 앉은 채 손댈 수 없는 여자로 남을 것이다
아나이스 닌은 소설가 헨리 밀러 부부와의 에로틱한 관계를 그린 책 『헨리와 준』으로 널리 알려진 ‘일기 작가’다. D. H. 로렌스 연구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여러 권의 소설도 남긴 닌에게 가장 중요한 작품은 역시 본인의 삶과 예술, 사랑을 진지하게 탐구한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닌은 14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사망 이후 150여 권이 넘는 일기장을 남길 정도로 평생 혼신을 기울여 일기를 썼다. 닌의 일기는 단순한 신변잡기와 개인적 기록에 머무르지 않으며 자신과 자신의 삶을 대상으로 예술가의 고뇌와 광기, 언어, 사랑 등에 대해 끊임없이 탐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헨리와 준』도 닌이 헨리 밀러 부부를 만나 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1932년 한 해 동안 써낸 일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아나이스 닌은 은행가의 아내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 『북회귀선』의 헨리 밀러를 만남으로써 예술과 관능의 상관관계에 눈뜨며 보다 치열하게 글쓰기에 몰입한다. 또한 동시에 헨리 밀러의 아내 준에게 매혹되면서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남성성과 양성애적 기질을 깨닫기도 하고, 다양한 성적 모험을 통해 그간 속박되어 있던 진짜 자기를 드러내는 법을 배워 나간다. 그 모든 과정을 남김없이 기록한 일기는 한 젊은 여성의 혼란과 불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문학으로 다듬어져 가는가를 보여주는 한편, 예술과 정신분석에 대한 진지한 관심, 부르주아 사교 모임과 예술가들의 교류, 자유분방한 성적 교류 등 1930년대 파리의 문화적 풍경을 내밀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레오니 비쇼프의 『아나이스 닌 : 거짓의 바다에서』는 『헨리와 준』을 기반으로 아나이스 닌이 가장 뜨겁게 살았던 한 해를 밀착해서 들여다보는 그래픽노블이다. 헨리 밀러 부부와의 광기 어린 관계가 중심에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