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_005
옮긴이의 말_012
제1장 충실한 신봉자
아버지의 유산
서리 내린 밤의 그림자_25 | 아버지 히데노리의 경력_30 | 조슈벌에 대한 저항_37
러일전쟁 출정_46 |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의도_54 | 육군대학교 합격_63
군인으로 자립하다
「성규유집」, 그 아버지에 그 아들_69 | 야마시타 도모유키와 교우하다_75
바덴바덴의 밀약_82 | 우가키 군축에 저항하다_88 | ‘잇세키카이’의 탄생_96
힘을 얻는 고급장교
제1연대장 시절_103 | 취업알선위원회_110 | 3월 사건 이후_118
만주사변의 수습_124 | 황도파와 대립하다_133 | 제24여단장으로_140
나가타 군무국장의 참살_149
역풍에 맞서서
도조를 매장하라_157 | 2·26 사건, 그 후_165 | 제출하지 못한 사직원_171
도조병단의 이면에서_176 | 과감한 관동군 참모장_183 | 굴욕으로부터 탈출하다_193
제2장 낙백落魄 그리고 승룡承龍
실천하는 사람의 저주
참모차장과 육군차관의 충돌_201 | 부재증명의 나날들_207
‘물장사’는 딱 질색이다_214 | 육군상 도조와 외무상 마쓰오카 요스케의 밀월_219
육군성과 참모본부의 졸렬한 미국관_228 | 이시와라 간지와 충돌하다_234
투시력이 없는 집단
일미교섭, 오해의 시작_241 | 마쓰오카 구상의 붕괴_249
독일군의 소련 침공_259 | 자원부족론의 대두_267
그대는 더 이상 말하지 마라
환상 속의 일미 정상회담_276 | 성려에 떠는 어전회의_283
무너진 고노에의 기대_288 | ‘중국 철병’이 열쇠로……_294 | 도조 내각의 탄생_304
통곡하는 수상
격렬한 연락회의_318 | ‘을안’을 둘러싼 논쟁_327 | 독재로 기울다_334
들끓는 대미 강경 여론_339 | 일미 개전에 대한 공포_346
제3장 패배의 궤적
싸움의 시작
홍수를 이루는 도조 찬가_363 | 거만해지는 지도자_373 | 지식
도조 히데키를 통해
그의 시대를 들여다보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는 전형적인 군인 출신 정치가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으로 꼽힌다. 한때 도조는 대일본제국의 광영을 만천하에 떨칠 영웅이라며 일본인의 추앙을 받았지만, 연합군에 패전한 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몰락했다.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 그는 ‘역겨운 멸시의 대상’으로 평가되어 왔고, 그의 행적은 일본 근대사의 치부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호사카 마사야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도조 히데키를 불편하고 역겨운 대상으로만 남겨두어도 괜찮은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도조 개인에 대한 매도는 역사적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민중을 전쟁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근대 일본 정치의 한계를 도조 히데키나 몇몇 전범들에게만 뒤집어씌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저자는 바로 이런 점에 문제의식을 느껴『도조 히데키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도조 히데키를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되돌려놓고자 했다.
도조 히데키는 육군중앙유년학교,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의 요직을 두루 거쳐 수상에까지 오른 전형적인 ‘정치군인’이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1942년 수상, 육군상, 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면서 절정에 이른다. 1937년 관동군 참모장으로 근무하면서 중일전쟁(지나사변을 직접 경험한 그는 1941년 12월 진주만 폭격 이후 확대된 전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전쟁의 폭풍우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패전 후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서 교수형 판결을 받고 1948년 12월 처형된다.
도조 히데키의 삶은 근대 일본의 전개 과정과 대체로 일치한다.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서구를 모방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 일본을 아시아의 강국을 넘어 일약 세계의 열강으로 키운 힘은 전쟁이었다. 메이지 유신을 전후한 시기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