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600년 전 금속활자
항아리에서 나온 수수께끼의 활자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확인된 갑인자
몰래 묻었다 다른 물건을 만들려고 했을까?
2 금속활자에 관한 오해와 편견
최초의 금속활자와 관련된 오해
가장 많은 금속활자를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과소평가
금속활자를 둘러싼 한·중·일의 자존심 싸움
21세기에 생각하는 금속활자의 의미
3 조선의 왕들은 왜 금속활자에 집착했나?
태종이 금속활자를 만든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문자가 새겨진 보물
금속활자의 제작은 문화와 경제력의 척도
왕들의 시그니처 활자
막을 수 없었던 민간의 금속활자 제작
4 활자의 서체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인쇄용 서체의 기준이 된 손글씨
명필들의 흔적
활자의 이름은 어떻게 붙일까?
책에 따라 달라지는 서체
5 한글 활자 이야기
한글 활자가 걸어온 길
한글로 된 책들의 서체와 편집
이름조차 없는 한글 활자들
나 지금 진지하다, 궁서체다
6 활자 만들기에서 인쇄까지
금속활자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세종의 활자 개량
갑인자는 정말 활자 제작 기술의 정점일까?
명품을 완성하는 종이와 먹
7 문치주의의 숨은 공신들
어떤 사람들이 책을 만들었을까?
158년 만에 드러난 뜻밖의 이름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들만의 활자 분류 방법
맺음말
참고문헌
항아리 속 금속활자는 누가 묻었을까?
문화 수준과 경제력의 척도였던 조선시대 금속활자
이 책은 2021년 6월, 서울 인사동에서 출토된 1600여 점의 조선 전기 금속활자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인사동에서 발굴된 활자 중에는 15세기에 만들어진 한글 활자와 세종대왕이 만든 갑인자가 포함되어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금까지 갑인자는 실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사동 출토 활자를 두고 “우리 인쇄사를 새롭게 써야 할 위대한 발견”이라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와 의미”를 지녔다는 연구자들의 평이 줄을 이었다.
오랫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활자를 조사하고 정리해온 지은이에게 인사동 발굴 활자는 그동안 답을 찾지 못했던 숙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대다수의 활자와는 입수 시기와 연유가 다른 150여 점의 금속활자가 있었다. 서체와 모양 등을 볼때 조선 전기 활자와 비슷하다고 추정만 하고 있었던 이 활자들은, 인사동 발굴 활자들과 비교해 보면서 갑인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인사동의 항아리 속 활자들은 누가 묻은 것일까?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값비싼 구리를 사용하여 문자를 새긴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 왕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금속활자를 가지고 싶어했지만 누구나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활자를 만든 왕은 정조로 1백만 자가 넘는 활자를 만들었고, 그 뒤를 이어 세종과 세조가 수십만 자의 활자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금속활자를 거의 만들지 못했으니, 금속활자의 제작 규모는 조선의 성쇠와 궤를 같이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귀한 구리로 만든 이 금속활자를 누군가 경제적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훔친 것은 아닐까?
이처럼 지은이는 조선 금속활자에 얽힌 미스터리에 관해 다소 도발적인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고, 활자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명필로 인정받은 안평대군의 서체로 만든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