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과 사기꾼, 광인을 만들어낸 1897년의 극지 여행
1897년 벨지카호의 남극 원정에는 19명의 선원이 함께했고, 그 배를 이끈 인물은 서른한 살의 사령관 아드리앵 드 제를라슈였다. 어려서부터 선박 모형을 갖고 놀며 오로지 바다 위에서의 삶을 꿈꾸었던 제를라슈는 유서 깊은 벨기에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에 입대했고, 이후 네덜란드 원양 선박 등에서 일했으며, 마침내 마음속으로 품었던 원정대를 직접 꾸리기로 결심했다. 선진국들이 식민지 탐색전을 벌이며 바다로 나서던 시절에 “나라고 왜 못 해?” “벨기에라고 왜 못 해?”라는 반문을 품으면서.
제를라슈는 과학적 임무를 탐험의 첫째 목표로 삼았지만, 세계지도 하단에 있는 텅 빈 공백을 채우겠다는 낭만적인 꿈도 품었다. 그리하여 3년 넘게 이 탐험을 계획했고, 함께할 사람들을 구했으며(탐험 성공의 3분의 2는 누구와 함께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금을 모았다. 그의 주위에 낙관주의자들은 별로 없었다. 온통 회의주의자들이 둘러싸더니 이 탐사가 과연 성공하겠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제를라슈는 이에 굴하지 않고 확고한 결단력으로 마침내 투자자들과 정부 지원까지 끌어냈다. 그는 단순히 모험정신만 지녔던 게 아니라, 이 탐사로 벨기에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짙은 애국심, 가문의 이름을 빛내겠다는 명예욕까지 품었다. 한편 이런 감정의 무게는 탐사 내내 그를 따라다닐 것이며, 때로는 실패와 수치심으로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릴 위험도 있었다. 사실 그는 죽음보다 불명예를 더 두려워하는 인간이었기에 리더로서 결정적인 순간에 선원들의 목숨을 중시하기보다 목표를 먼저 떠올릴 사람이었다.
애초에 드 제를라슈가 세운 목표는 위도 75도 부근에 있는 남자극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남자극점의 정확한 위치를 정하면 향후 항해사들이 나침반 판독을 더 정확히 할 수 있을 테고, 따라서 벨지카호의 결정적인 업적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었다.
19명의 선원은 오합지졸까진 아니더라도 정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