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언
1부 《칠극》과 초기 신앙공동체
1. 《칠극》 이야기
북경 유리창 거리의 문화충격 |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과 판토하의 《칠극》 | 봄비에 속옷 젖듯 서학에 젖어들다
2. 다산 정약용과 《칠극》
《칠극》을 평생 아껴 읽은 다산 | 《칠극》의 논의를 풀어쓴 〈취몽재기〉 | 메기와 미꾸라지
3. 홍유한 제문의 행간
최초의 수덕자 홍유한 | 권철신이 쓴 홍유한 제문 속 《칠극》 논의 | 이기양 제문 속의 칠극론
4. 홍유한의 남인 인맥과 서학 공부
남인 인맥과 초기 천주교의 중심 | 홍유한의 서학 공부, 〈방성도〉와 서방 성인의 일 | 마테오 리치의 책 두 권에 몰입하다
5. 권철신의 남행 계획과 그들이 꿈꾼 공동체
제가 공을 저버렸습니다! | 이병휴와 성호학파 소장 그룹 | 좌절된 남행 계획 | 이존창과 권철신
6. 주어사 강학회의 공부 내용
두 번 갖지 못할 성대한 자리 | 잠심하여 지내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라! | 《천주실의》, 《영언여작》, 《칠극》을 읽다 | 희미한 꿈의 자락
7. 권철신과 주어사의 젊은이들
주어사 강학회의 참석자들 | 권철신의 조카사위 김원성 | 권일신의 맏아들 권상학 | 이기양의 맏아들이자 권철신의 맏사위 이총억
8. 광암 이벽,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
강물 같은 언변과 고상한 품행 | 장인 권엄과 홍유한의 우정, 이덕무의 이벽 평 | 설화적 부풀리기 | 선학과 앵무새, 다산과 박제가의 만사
2부 성호학파의 분기와 성호의 진의
1. 성호의 진의
성호 선생도 서학을 했다던데요? | 신후담과의 토론과 진의의 소재처 | 성호 직계의 서학 존신
2. 안정복과 권철신·이기양의 엇갈림
다혈질의 정약전 | 안정복과 이병휴 | 회복 불능으로 틀어진 관계
3. 권철신의 결별 선언
거침없는 이벽의 기세 | 침묵으로 더 큰 죄에 빠지지 않으렵니다 | 이 같은 작태를 참을 수 없네
4. 이기양의 정면 도발
늙은이의 잠꼬대 | 함정에 빠뜨리는 도둑으로 몰다니 | 마음이 아파서 쓴다 | 독
서학의 태동기부터 신유박해까지
호교(護敎와 순교를 넘어 한국 초기 교회사를 새로 쓴 역작
서학은 어떻게 조선의 지축을 뒤흔들었나
“서학은 조선 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과소평가되어온 느낌이다. 지축을 흔든 지진이 지나고 남은 흔적만으로 상황을 본 것은 아닐까? 의도적으로 은폐되고 지워져서 별일 없었던 것처럼 보인 것은 아닐까? 진앙의 한가운데 있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는 다급했던 현장의 비명과 탄식이 묻어 있다. 행간을 조금만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 기록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진실의 지점을 열어 보여준다.” _서언에서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 분야를 깊이 탐구해온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 교수가 1770년대 중반 서학의 태동기부터 1801년 신유박해까지 초기 천주교회의 역사를 집대성한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를 펴냈다. 치밀한 연구와 철저한 고증을 토대로 천주교계와 학계에 답습되어온 오류를 바로잡았고, 새롭게 발굴·소개하는 문헌과 방대한 사료, 상세한 각주를 통해 서학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을 검증하고 밝혔다.
다산 정약용을 다각도로 공부해온 정민 교수는 다산의 청년기와 천주교 신앙 문제를 다룬 《파란》을 집필하며 조선 사회에 서학이 끼친 영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조선에 서학 열풍을 일으킨 천주교 수양서 《칠극》을 번역했고 제25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을 수상했다. 《파란》과 《칠극》에서 시작된 정민 교수의 이러한 지적 여정은 18세기 조선을 관통한 초기 교회사 연구로 이어졌다. 정민 교수는 서학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과 신앙에 관한 기록에 살펴야 할 행간이 많음을 주목했고, 마침내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가 탄생했다.
서학의 수용과 배척이 불러일으킨 남인 내부의 첨예한 갈등, 이벽·정약종·황사영·강완숙 등 교회의 핵심 리더, 명도회를 비롯한 중앙과 지방의 신앙공동체, 명례방 집회와 주문모 신부 실포 사건, 민중의 신앙생활과 퍼즐 같은 세례명 표기까지. 이 책은 탄압과 순교의 역사 뒤에 가려진 절체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