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역할을 맡은 불가사리가 ‘주인공’이 된다면?
표제작인 「불가사리를 기억해」는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 ‘쇠를 먹는 불가사리’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한 동화다. 이야기의 주된 요소는 비슷하지만,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은 ‘불가사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원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옛이야기 ‘쇠를 먹는 불가사리’는 아줌마가 바늘을 먹여 키운 불가사리가 전쟁터에 나가 무기들을 몽땅 먹어치우는 데서 끝난다. 그 이야기에서 불가사리는 은혜를 갚고 사라지는 괴물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사라질 뿐이다. 하지만 만약 불가사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상처를 받고, 분노하는 입체적인 존재였다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날 수 없었을 것이다.
유영소 작가는 새로 쓴 이야기 「불가사리를 기억해」에서 불가사리를 주인공의 자리에 놓는다. 자신을 이용하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맛난 것이 잔뜩 있다’는 아줌마의 말을 믿고 전쟁터로 간 불가사리. 무기를 먹어치워 전쟁을 끝냈다고 추켜세우기도 잠시, 임금은 불가사리를 그다음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감옥에 가둬 버린다. 속상하고 억울해진 불가사리는 엉엉 울고 소리도 지르고, 아줌마가 찾아와 구해 주기를 한없이 기다려도 본다.
하지만 아줌마는 오지 않았어.
‘다른 사람이라도 좋아. 누구라도 좋으니 와서 나를 구해 주었으면…….’
한 명은 있겠지. 전쟁이 끝났을 때 모두 그렇게 좋아했잖아. 다들 불가사리한테 고맙다고 했잖아. 그중에 한 명만, 한 명만 도와줘!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어. (30-31쪽
은혜를 모르고 이용만 하려는 사람들에게 지쳐 화가 난 불가사리는 제 힘으로 감옥을 부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줌마는 다른 사람들처럼 불가사리를 괴물로만 취급하고, 두려움에 떨며 아이를 챙기기 바쁘다. 그 모습에 상처 입은 불가사리의 눈물은 읽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은혜를 갚은 존재가 등장하는 옛이야기는 늘 ‘은혜를 베푼 인간’의 입장에 주목한다. 시련을 이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