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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제국주의와 전염병 :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은 의학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저자 짐 다운스
출판사 황소자리
출판일 2022-06-30
정가 23,000원
ISBN 979119129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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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5

1 혼잡한 공간들: 노예선, 감옥 그리고 신선한 공기·17
2 누락된 사람들: 전염 이론의 몰락과 역학의 부상·57
3 역학의 목소리: 카보베르데의 열병 추적·83
4 기록관리: 대영제국의 역학·113
5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크림전쟁과 인도에서 전염병과 싸운 숨겨진 역학자·141
6 자선에서 편견으로: 미국위생위원회의 모순적인 임무·183
7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 노예제, 남부연합, 역학 연구·219
8 이야기 지도: 흑인부대, 무슬림 순례자, 1865~1866년 콜레라 대유행·263

결론: 역학의 뿌리·303
주석·315
찾아보기·375
코로나 19로 인한 의료 위기를 몸으로 겪은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명저!

# 노예무역이 한창이던 18세기 말, 아프리카 서부해안에서 강제로 노예선에 실린 한 남자가 죽기로 작정했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 채 기구한 운명에 맞서던 남자는 어쩌다 손에 넣은 칼로 자기 목을 수차례 그었다. 배에 실린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뜬 남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삶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839년, 영국 내과의사 로버트 톰슨이 이 이야기를 의학 잡지 〈랜싯〉에 실었다. 톰슨은 이 사람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 배에 탔던 의사 트로터가 1790년대 영국 의회 청문회에 나가 증언한 내용 중 일부를 인용했을 뿐이다. 톰슨은 이 남자의 죽음을 인간이 먹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썼다. 톰슨은 이 노예선을 덮쳤던 질병이나 노예무역의 잔인함에 대해 잘 알았지만, 그건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단곡斷穀 상태’에서 인간이 얼마나 생존하는지 연구하던 톰슨에게는 오로지 노예로 팔려가던 한 남자가 먹지 않고 열흘이나 버텼다는 증거만이 중요했다.

# 엄마 손을 잡고 흙먼지 날리는 큰길로 접어든 흑인 아이는 왈칵 닥쳐온 두려움에 눈물을 훔쳤다. 앞쪽 히코리 나무 아래 백인 남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예인 두 모자母子의 소유주와 의사였다. 소년이 도착하기 무섭게 의사는 가느다란 아이의 팔뚝을 날카로운 칼로 찔러 상처를 내고는 준비해온 천연두 ‘딱지’를 피가 나는 살갗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천연두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염 안 된 아이의 몸을 이용해 다량의 ‘깨끗한 백신’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남북전쟁은 발발했고 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적이 출현한 상태였다. 천연두였다. 에드워드 제너가 백신 접종법을 개발한 후였지만 무섭게 퍼지는 질병을 감당할 물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위기상황에서 남군의 의사들은 퇴행적인 대안을 떠올렸다. 인두법이었다. 백신 채취에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