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재 [나]를 행하다
나의 인식이 투명해지는 증거는 타자(他者의 생각이 나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의 일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타자(他者를 존중하게 된다. 타자(他者와 대립할 때 느끼는 나는 말 그대로 타자와의 대립체일 뿐이다. 그것을 [나]라고 생각함으로써 좀 더 [나]로부터 멀어진다. 타자를 수용하기 시작하면 인식은 급격히 증가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란 쉽지 않다. 너무 많은 독서도 좋지 않다.
2. 모방을 벗다
아쉬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나]에 대하여 미련을 버리는 것이 좋다. 마음 쓸 것은 없다. 그래도 [나]는 그대로이다. 보통 자신이 명석하다고 생각할수록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존재 [나]를 찾는데 머릿속에 있는 타자(他者의 지식이 장애물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오래된 친구, 이성(理性은 사람을 보편적 진리로 인도하는 것 같지만 실은 누구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 어리석은 허구 속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이성과 감성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의 특성은 감성적이다. 존재 [나]는 변화와 우연을 그 특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3. 질서를 무너뜨리다
시간은 존재 [나]를 생성시키는가, 무너뜨리는가? 시간과 [나]는 좌표축이 다르다. 그는 나를 생성시키지도 무너뜨리지도 않는다. 시간과 존재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갈 뿐이다. [나]는 존재하는 ‘나’, 의지하는 ‘나’, 인식하는 ‘나’로 구분된다. 이때 시간은 각각 다르게 작용한다. 부분적 ‘나’는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나’를 파괴해도 변화 없이 남는 것, 그것이 존재 [나]이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육체와는 관계없다.
4. 생각을 멈추다
꿈속에서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도서관 가득한 지식도 그렇다. 잃었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길을 멈추어야 한다. 천천히 보면 낯선 길 속에서 어느 쪽이 남쪽인지 보인다. 때에 따라서는 밤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