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해제
서문
제1과 우리나라
제2과 지식을 얻는 방법
제3과 아기 사슴 이야기
제4과 도회
제5과 도쿄
제6과 오빠의 친절
제7과 우리 집
제8과 일본 고대의 개요
제9과 교토
제10과 야마토 다케루노미코토의 용맹
제11과 한 방울의 물 이야기
제12과 침실의 널문
제13과 야마토 다케루노미코토의 오랑캐 정벌
제14과 목탄
제15과 오에 아무개의 이야기
제16과 상업 및 교역
제17과 오사카
제18과 상고시대 사람들 1
제19과 상고시대 사람들 2
제20과 번영해 가는 천황의 치세
제21과 닭 이야기
제22과 해안
제23과 요코하마
제24과 강낭콩
제25과 삼한의 항복
제26과 시계
제27과 개 이야기
제28과 구름과 비 이야기
제29과 구름
제30과 문학의 도래
제31과 바닷속 화원
제32과 나가사키 1
제33과 나가사키 2
제34과 나가사키 3
제35과 서적
제36과 차 이야기
제37과 손의 기능
원전
한국 최초의 근대적 국어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의 저본
근대 일본은 메이지시대에 급격한 교육제도의 변화를 겪는다. 1872년 프랑스의 학구제를 모방해 지역을 나누어 교육기관을 설치하는 ‘학제學制’가 공포되자 그에 맞는 교과서 편찬이 시급해졌다. 당시에는 1860년대 미국의 초등교육 교재인 Willson’s Reader를 번역하여 교과서로 발행하는 등 서구의 교과서를 번역 출간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당시의 지식인들에게도 서구의 지리나 근대과학을 소개하는 것이 계몽운동의 중요한 일 중 하나였기에 단기간에 수많은 번역교과서가 발행되었다. 그러나 1879년에 ‘학제’가 폐지되고 ‘교육령敎育令’이 공포되면서 교과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문부성의 관리이자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의 일원인 다나카 후지마로田中不二麻呂가 미국을 다녀온 뒤 교육의 권한을 지방으로 위탁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교육령’으로 인해 지방의 교육 권한이 대폭 강화되었다. 아직 성숙한 교육시스템이 정착하지 못했던 일본에서 오히려 교육령으로 인해 학제가 구축해놓은 질서가 붕괴되자 많은 비난이 일었다. 그러자 이듬해 1880년 ‘개정교육령’이 공포되었고 3월에 문부성은 편집국을 설치하여 교과서로 부적당하다고 판단되는 교과서에 대해 부현府?에 통지하여 사용을 금지했다. 1883년부터는 교과서 인가제도가 시행되어 문부성의 인가를 얻어야만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885년에는 초대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森有?가 취임한 후 1886년 3월 제국대학령帝國大學令, 4월 사범학교령師範學校令, 소학교령小學校令, 중학교령中學校令을 연이어 공포함으로써 근대학교제도의 기반을 확립했으며, 1887년부터 ‘교과용도서 검정규칙敎科用圖書檢定規則’을 시행함으로써 교과서의 검정제도가 시작되기에 이른다.
1888년에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등소학독본은 고등소학교용 국어독본이다.
고등소학高等小學은 1886년부터 1941년까지 설치된 교육기관으로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를 졸업한 사람이 다녔던 학교기관이다. 오늘날의 학제로 말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