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맞는 ‘새 부대’가 되어줄 지도자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확실한 신념과 목표를 갖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국민을 설득해갈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그러한 지도자들이 존재했음을 배웠고 따라서 우리에게도 그러한 지도자상이 강조된다 해도 비현실적인 꿈은 아니라고 믿는다._4쪽
일본과 우리나라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854년 개항 이래 메이지유신과 전후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선진국을 따라가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던 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 된 지금 목표를 잃고 내부적인 대립과 투쟁을 겪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점에서 같은 입장이라는 사실은 이미 소개한 그대로다._6쪽
시부사와의 삶에서 기업의 창업과 경영은 가장 핵심적 활동이었다. 모든 그의 업적은 이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창업에 관여한 기업은 정확하지 않으나 500여 개 정도로 봐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시부사와의 능력과 인격만 아니라 근대화의 과업을 수행해야 할 절박한 시대 상황이 그런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_44쪽
시부사와의 창업 활동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합본주의·기반산업주의·공익우선주의·이식산업중심 등이 바로 그것이다. 기업 창업으로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우선시한 시부사와로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시부사와는 그토록 많은 기업을 창업했음에도 미쓰이 가문이나 이와사키(岩崎 가문처럼 재벌을 형성하는 일은 없었고 그것이 도리어 시부사와에 대한 일본사회의 신뢰를 깊게 한 것이다._52쪽
시부사와가 이렇게까지 많은 회사에 관여하게 된 것은 그의 성격과도 관계가 깊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그의 자상함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회사나 개인의 곤란에 발 벗고 나서다보니 어느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시부사와는 실업계에서 은퇴한 후에도 어려움에 처한 회사의 요청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