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흔히들 5세기의 일본열도를 ‘왜(倭 5왕(王의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당시 중국 남조(南朝에 조공 외교를 했던 찬(讚·진(珍·제(濟·흥(興·무(武라는 다섯 명의 왜왕이 중국(中國의정사(正史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_7쪽
어느 때보다도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일본인의 인식 속에 잠재해 있는 갈등의 시작점에는 ‘임나일본부설’이라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자리하고 있다._9쪽
왜 5왕은 대체 누구이고 당시 일본열도의 상황이 어떠하였으며, 당시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정세는 어떠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데에 매우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_9쪽
그렇다면 『송서』에 등장하는 왜왕이 과연 일본 측 사서에 기술된 어떤 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정작 문제는 『송서』에는 왜 5왕의 이름이나 행적이 나오지만 이들 왜왕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는 재위 연대나 왕력 등이 5세기 일본 측의 사서에 나오는 왜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_34쪽
일본의 사서를 통해서든 일본의 고분을 통해서든 5세기 왜왕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 쓰인 사서를 통해 일본의 고대사를 살펴보는 것이 유용한 상황이 된 것이다. 중국 사서의 중요성은 중국이라는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왜국의 문화와 풍습 등을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송서』에 보이는 왜 5왕의 기록이 더욱 주목되는 상황이다._48~49쪽
이처럼 한반도 남부의 중심 세력으로서 고구려와 대항하던 백제가 왜를 끌어들였던 시대 이후에 왜가 자신을 고구려에 대항하는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은 백제와 왜 왕실이 소원한 관계에 있었던 정황과도 상당히 관련이 있을 법하다. 따라서 당시 왜왕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제군사권의 자칭이나 제수 요청은 실제 한반도 남부의 점유 및 지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오히려 이들 지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