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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해공 신익희 평전 : 독립운동과 민주화의 큰 별
저자 김삼웅
출판사 동아시아
출판일 2022-05-25
정가 18,000원
ISBN 978896262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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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 독립운동과 민주화의 큰 별 해공 신익희 선생

제1부 독립운동의 큰 별로 떠올라
01|총명한 아이로 자란 성장기:
학덕의 아버지와 현숙한 어머니
02|일본 유학 시기:
와세다대학, 학업과 비밀결사
03|3·1 혁명의 마그마 역할로:
보성전문학교의 명교수가 되다
04|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의원으로 ‘임시헌장’을 기초하다
05|임시정부 분열 속 새 길을 모색하다:
국민대표회의도 결렬되고
06|민족운동진영 통합운동에 앞장서서:
한국혁명당 창당을 주도하고
07|임시정부에 돌아오다:
‘한중문화협회’를 조직, 운영하면서

제2부 해방조국 민주화의 큰 별로 살다
08|해방된 조국에서 새로운 시작:
임시정부 요인들, ‘개인자격’으로 귀국
09|독자노선을 추구하다:
민족진영 통합을 위한 ‘독촉국민회’ 조직
10|입법부의 수장으로:
국회의장에 선출되다
11|정치 격랑기에 국정의 중심을 잡아:
백범 김구 암살 비보에 추도사를 쓰다
12|6·25 전쟁의 와중에:
이승만,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도주하고
13|높아진 정치적 위상에 따른 탄압:
26개국을 순방하며 거둔 외교성과
14|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다:
전통야당의 원조 민주당의 창당
15|서거 그리고 추모사업:
63세, 호남선 열차에서 눈을 감다

남은 이야기|민주적인 리더십을 기리며
해공 신익희 선생 연보
신익희의 홀연한 죽음이 가져온 한국 정치의 비극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외침이 정권교체를 열흘 남기고 무산되기까지

1956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신익희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로 선풍을 일으켰다. 서울 인구가 150만 정도이고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상황에서도, 서울 한강변 모래밭에 40만 인파가 모여 신익희의 후보 유세를 들었다. 명연설을 마치고 다음 유세차 탑승한 열차 안에서 신익희는 급서하고 만다.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꼭 열흘 남긴 채 주역이 사라짐으로써 한국현대사는 급변하게 된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외세가 만든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민족자주의 민주공화제를 실행할 지도자들이, 여운형·김구에 이어 신익희가 서거하면서 차례로 사라졌다. 신익희가 건재하여 그때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면, 이승만의 독재와 부패의 늪지에서 기형적으로 성장한 정치군인들의 쿠데타와 같은 변태는 발생하지 못하고 민주주의가 발전했을 것이다. 신익희의 돌연한 서거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오래 지체된 것은 한국 현대사의 불행이었다.


27년간 쉼 없는 독립운동으로 보낸 청장년 시절

신익희는 일본 유학 시절에 조선유학생 학우회에서 활동하면서 기관지 《학지광》을 펴냈고, 비밀결사 조선학회를 조직하면서 2·8 독립선언과 3·1 운동의 초석이 되었으며,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이승만이 야기한 분란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임시정부 분열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하고 한국혁명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좌우통합의 민족혁명당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을 지냈으며, 조선의용대에 결성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해 오자 한중문화협회를 설립하여 독립운동의 후원단체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42년부터는 임시정부에서 내무부장에 선임되어 해방을 맞기까지 다시 임시정부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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