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
추천사
저자 서문-3
추천사-6
1.조선여인의 묘-도쿠시마현 가와시마초 (?島?川島町-10
2.고려 갸한의 성주-도쿠시마현 도쿠시마시(?島??島市-18
3.두 개의 도진총(唐人塚-가가와현 다카마쓰시(香川?高松市-26
4.도진마치(唐人町의 유래-고치현 고치시(高知?高知市-33
5.도진두부(唐人豆腐와 도토리 두부
-고치현 오토요초·아키시(高知?大豊町·安芸市-41
6.히데요시와 죠텐(?天-에히메현 우와지마시(愛媛?宇和島市 -48
7.한밤중의 호랑이춤-에히메현 마쓰야마시(愛媛?松山市-56
8.종군한 스님의 일기-오이타현 우스키시(大分?臼杵市63
9.뛰어난 심미안의 조선인 쇼안(庄庵-오이타현 사에키시(大分?佐伯市71
10.가로직으로 출세한 피로인-오이타현 구스마치(大分?玖珠町79
11.도진부부의 전설-미야자키현 다카치호초(宮崎?高千?町87
12.파리파리 절임-미야지키현 휴가시(宮崎?日向市93
13.조선매듭 -미야자키현 사도와라초(宮崎?佐土原町100
14.아득하게 먼, 400년 -가고시마현 미야마초(鹿?島?美山町107
15.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석교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鹿?島?鹿?島市115
16.남원성에서 잡혀온 아이-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시(鹿?島?種子島市)123
17.류큐(琉球의 후예들 -오키나와현 나하시(沖??那覇市131
18.민요의 주인공-오키나와현 나카도마리(沖??仲泊138
19.정한비(征韓碑가 있는 항구도시-가고시마현 센다이시(鹿?島?川?市145
20.구마모토성의 조선기와-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熊本?熊本市152
21.피로인 형제가 전한 한지-구마노토현 가호쿠마치(鹿?島?鹿北町159
22.노예상인의 암약-나가사키현 나가시키시(長崎?長崎市166
23.조선인 천주교 신자들-나가사키현 나가시키시(長崎?長崎市173
24.영주부인이 된 조선여인-나가사키현 히라도시(長崎?平?市180
25.웅천을 옮긴 동네-나가사키현 사세보시(長崎?佐世保市187
26.가규 가마(臥牛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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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刀? 감상의 세계에서 일본도(日本刀는 게이초년간(慶 長年間:1596년~1615년을 경계로 그 이전의 것을 고도(古刀라 하고, 그 이후에 나온 것을 신도(新刀라 부른다. 역사소설가인 가이온지 조고로(海音寺潮五?는 그것이 임진왜란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조사했더니, 역시 일본의 도공(刀鍛冶들이 조선에 건너가 그들의 경험을 살렸다는 것을 『일본의 명장(日本 の名匠』에서 언급했다.
이것은 일본이 중세에서 근세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일본의 외국침략 경험이 그 이후 일본의 사회·경제·문화 혁신의 계기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아주 작은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죄 없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임진왜란 때문에 일본으로 잡혀왔다. 이것은 바로 ‘중세의 강제연행’이지만 그들 피로인(被慮人들이 이국인 일본 땅에서 단지 향수만을 품고 멍하니 세월만 보낸 것은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어려움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한자리에 정착하여 일본의 경제·문화·사회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이 일본의 많은 분야에 공헌한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러한 일을 충분히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부족함 때문이다.
이 기행문을 최초로 쓴 것은 1983년의 일이니까, 근 2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일본 각 지역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당시 나는 재일한국인 사회를 대상으로 한 「통일일보(統一日報」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관계로, 이 신문에 졸고의 기행문을 게재한 것이 시작이었다.
신문사를 퇴직한 후 『앞으로21』이나 『불고기문화』 등의 잡지에서 적극적으로 지면을 제공해 주었다. 그 후에도 「민단신문」 에 연재되어 중단하는 일이 없이 즐거운 여행과 취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원래 이 기행문을 쓰게 된 계시를 주신 분은 당시 「고베신문 (神?新聞」의 편집위원을 하셨던 미야자키 슈지로(宮崎修二朗 선생(현재 고베사학회 회장이다. 어느 정도 원고량이 나왔을 때 출판을 권유받았다. 많은 세월 피로인의 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