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연표
010 클림트 시대의 빈
016 혁명과 링슈트라세
022 클림트의 탄생
026 클림트의 성격과 사생활
040 클림트 양식의 기원
048 빈 분리파
062 베르 사크룸
066 추문
076 장식미술
086 빈의 유대인
092 클림트의 후원자와 수집가
106 초상화
118 풍경화
128 알레고리와 상징
144 클림트, 프로이트, 성
154 클림트, 말러, 음악
164 드로잉
172 한 시대의 종말
176 주석 177 참고문헌 177 도판 출처 178 찾아보기 182 감사의 말
클림트의 양식 ‘알레고리’, ‘장식미술’:
‘학부 회화 3부작’ <철학>, <약학>, <법학>과 <키스>, <물뱀>, <유디트> 등
‘황금빛 화가’ 클림트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알레고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가 남긴 작품 다수는 초상화와 풍경화이지만 스스로를 초상화가, 풍경화가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광범위하게 미술사조에서 그의 작품을 설명하자면, 뭉크, 뭉크, 페르디난트, 슈투크, 크노프와 같은 상징주의에 더 가깝다. 문학과 시각예술에서 상징주의가 진보하던 때는 클림트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던 19세기 중엽이었다. 클림트는 전설, 신화, 꿈 등 눈에 보이지 않은 철학적 개념과 관념 등을 형상화하고,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알레고리 즉 우의화로 남긴다.
클림트의 초상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매다 프리마베시>,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등
클림트가 그린 초상화 속 인물은 대부분 그의 후원자와 수집가들이다. 당시 빈은 파리와 베를린과 같이 미술시장의 발전이 더뎠기 때문에 전업 화가인 그가 의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그리는 것이었고, 그들의 저택 벽화를 꾸미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빈 대학교 벽화 ‘학부 회화 3부작’으로 큰 추문을 겪은 그는 더는 ‘공공미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흥 부르주아지이던 둠바 가문, 블로흐-바우어 가문, 카를 비트겐슈타인이 클림트의 후원자였고, 그중 ‘소냐 크닙스’가 유일한 ‘귀족’ 고객이었다. 클림트의 초상화는 유겐트슈틸(아르누보로 장식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또 장식으로 사용된 배경 무늬는 중국, 일본풍의 영향을 받아 패턴화한 것들로 보인다.
클림트의 풍경화:
<아터 호수> <카머 성 공원의 오솔길> <고요한 연못> 등
클림트에게 도시 빈 이외에도 ‘아터 호수’는 의미가 있는 곳이다. 풍경화를 꾸준히 그리던 클림트는, 아터 호수로 매년 여름 에밀리와 함께 떠나 휴가를 보냈다. 빈 사람들이 잘 모르는 호숫가를 풍경화로 남겼기 때문이다. 그의 풍경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