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 금강산도 책후경
한 획씩 닮아가다
시를 외우는 이유
책의 여백을 대하는 자세
책상은 원래 다 이렇잖아요
웰컴 투 이북(e-book 월드
납작하게 네모진, 반듯하고 단호한 물성
2. 책 같은 내 인생
헌 책을 뒤지는 여인
순정 만화가 터 준 물꼬
그 방에서 시작되었다
책과 바람나다
누구나 의미를 두는 장소가 있다
아몬드 나무 하우스가 있는 곳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서점
3. 책사람
책 읽는 남자
책벌레 레이더
책 읽는 여자
책이 맺어준 인연
디테일한 책덕후의 세계
방에는 책장과 책상, 의자말고는 가구가 없다. 1인 매트만 한 공간을 제외하고는 여기저기 책들로 둘러싸여 있고, 수첩 안쪽이나 모니터 모서리, 거울에는 어김없이 필사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게다가 책상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책을 소재로 푸른 안개 같은 그림을 그린 이정호 일러스트레이터의 캘린더도 꼭 세워 두어야 하고, 목 아프지 않게 책 읽을 수 있도록 높이 조절이 가능한 초대형 yiyo 독서대도 꼭꼭 있어야 한다. 리디북스에서 스페셜 고객에게만 제공한 ‘프로독서러’ 머그컵도 있어야 하고, 굳이 책 여러 권을 구입하면서 간신히 손에 넣은 이승우의 《모르는 사람들》 머그컵도 있다. 클립과 옷핀을 넣어두는 《데미안》 틴케이스도 손 닿는 곳에 있어야 하고,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와펜도 모니터 옆에 붙여 두어야 한다.
가방 구석이나 여기저기 주머니 속은 또 어떤가. A4 용지에 6포인트로 빼곡히 프린트한 시가 굴러다닌다. 시를 품으면 나 자신이 달라짐을 알기에 틈틈이 암송한다.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몸은 현실 이면을 볼 수 있는 마음을 열어준다고 확신하기에.
책이 좋아 책을 읽고, 책은 또 생활 곳곳에 그 영향력을 미친다. 앙투안 로랭의 《빨간 수첩의 여자》를 읽고 나서는 빨간 몰스킨 노트를 쓰기 시작했고, 존 버거의 《A가 X에게》를 읽고는 손편지를 자주 쓴다. 송찬호 시집 《분홍 나막신》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 제목을 빌려 컴퓨터 패스워드로 사용하며, 아이디·패스워드 찾기 질문으로 “가장 기억나는 추억의 장소는?”이 나오면 에리히 캐스트너의 《헤어졌을 때 만날 때》에 등장한 ‘물망초 뮌헨 18번지’를 저장한다.
책덕후는 책덕후를 알아본다
책 읽는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딜 돌아다니기보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이나 뜯어먹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 그렇게 좋다는 늬들은 책만 있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지 않느냐’는 건 책 읽는 사람들을 잘 모르는 말이다. 그들은 책이 좋지만 사실 사람도 좋다.